라이프칼럼

[노중훈의 짝사랑]괜찮다, 괜찮다, 맛있으니 괜찮다

식당 문을 여는 시간이 불규칙해도 괜찮다. 영업시간이 턱없이 짧아도 상관없다. 늘 문전성시라 줄 서서 기다려야 한데도 참을 수 있다. 음식 나오는 시간이 늘어져도 별문제 없다. 내부가 협소해서 옆 사람 어깨 부딪쳐가며 먹어도 큰 불만 없다. 주인장의 희로애락이 드러나지 않는 얼굴과 데면데면한 태도도 대수로울 것이 없다. 괜찮다, 괜찮다. 맛있으니까.

 

능이버섯은 ‘가을 산의 진객’으로 통한다. ‘일(一)능이, 이(二)표고, 삼(三)송이’란 표현은 버섯계에서 차지하는 능이의 존엄과 위엄을 말해준다. 경기도 양평의 ‘용문원조능이버섯국밥’은 용문역 앞 도로변에 자리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외관이 허름하다. 인적 드문 산간 마을에나 있을 법한 모양새다. 내부 분위기도 기묘하다. 직접 그렸다는 ‘문짝 그림’과 군대에 있어야 할 여러 개의 반합이 한쪽에 걸려 있다. 충북 제천의 월악산 자락에서 아홉 형제 중 일곱째로 태어난 식당 주인은 틈만 나면 가깝고 먼 산을 찾아 버섯이나 약초를 캐러 다닌다.

 

 

이 때문에 가게 문 닫는 일도 부지기수다. 그러니 이 집에서 물 한잔이라도 얻어 마시려면 사전에 전화를 해야 한다. 능이버섯전골에는 귀물인 능이버섯을 위시해 송이버섯과 느타리버섯 등이 아낌없이 들어간다. 육수는 엄나무, 뽕나무, 가시오가피, 헛개나무 등을 이용해 얻는다. 짙고 웅숭 깊은 맛이다. 전골에 넣어주는 칼국수도 쫄깃하기 이를 데 없다. 전골과 칼국수 이외에 버섯, 콩나물, 부추 등을 넣은 냄비약초밥도 만들어준다.

 

제주 서귀포의 ‘앞바당’은 휴게 음식점으로 등록돼 있어 주류를 일절 판매하지 않는다. 인근 편의점이나 가게에 들러 미리 준비해야 한다. 장담하건대, 앞바당에서 술 없이 버티는 일은 ‘미션 임파서블’이다. 식당 주인 내외는 표정이 별로 없고 말수도 적다. 사근사근한 태도와는 거리가 멀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부부의 모습에 당황스러워한다. 개인적으로는 아무렇지도 않다. 오히려 지나치게 친절한 식당이 나는 부담스럽다. 앞바당의 기본 식재료는 주인장이 주낙으로 잡아온 붕장어다. 번개탄 화로에 직접 구워 먹으면 된다. 양념장을 따로 준비해주기 때문에 소금구이, 양념구이 둘 다 즐길 수 있다. 오동통한 장어의 풍미도 좋지만 무엇보다 마당에 놓인 평상에서 서귀포 앞바다를 감상하며 먹는 맛이 흡족하다.

 

충남 공주의 ‘진흥각’은 영업시간이 매정하다. 오전 11시부터 오후 2시까지 딱 세 시간이다. 그나마 예전보다 40분이 늘었다. 내부가 들여다보이지 않아 늘 닫혀 있는 것 같은 외관도 특이하다. 진흥각에 탕수육, 군만두, 볶음밥은 없다. 오로지 짜장면, 짬뽕, 짬뽕밥 세 가지만 판다. 자리에 앉아 최소 20분 이상은 기다려야 한다. 여느 중국집에서나 만날 수 있는 단무지, 양파, 춘장이 말동무가 되어주는데 특히 투명할 정도로 얇게 베어낸 단무지의 맛이 좋다. 베스트셀러는 짬뽕. 깔끔하게 손질된 돼지고기와 오징어, 채소들이 보드라운 면과 함께 국물에 몸을 맡기고 있는데 건더기가 많은 편은 아니다.

 

진흥각 짬뽕의 백미는 국물이다. 불향이 강하게 묻어 있거나 걸쭉하고 진득한 쪽이 아니라 경쾌하게 구수하고 군더더기 없이 개운한 계통이다. 확실히 해장에도 맞춤한 국물이다. 짜장면도 나쁘지 않다. 짜지 않고 달지 않은, 각이 서 있지 않은 소스가 충분해서 면발에 골고루 묻어난다.

 

노중훈 여행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