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영의 드라마토피아

‘괴물’, 살인을 망각한 도시

 

JTBC 드라마 <괴물>의 한 장면.

드넓은 갈대밭에서 시신이 발견된다. 손마디가 훼손된 시신은, 20년 전 이 지역을 떠들썩하게 했던 연쇄살인 피해자들의 모습과 유사했다. JTBC 금토드라마 <괴물>의 오프닝은 연쇄살인을 소재로 한 수사 드라마의 흔한 도입부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사건의 기원인 2000년으로 되돌아간 다음 장면에서부터 <괴물>은 곧바로 기존 수사물 장르와 차별점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 드라마가 제일 먼저 비추는 것은 주요 배경인 문주시의 그린벨트 해제와 IT시티 개발 계획 확정을 축하하는 현수막이다. 지방 소도시의 낙후된 풍경과 현수막 문구에 나타난 욕망의 서글픈 대조는 <괴물>이 앞으로 달려갈 방향을 예고한다.

 

기존의 수사드라마가 사이코패스 살인마의 연쇄 범행과 그 뒤를 쫓는 형사들의 대결 위주로 전개될 때, 이 작품은 저 현실과 욕망의 머나먼 간극 어딘가에 숨어 있는 진정한 ‘괴물’의 실체를 바라본다. 이는 2회에서 좀 더 명확하게 나타난다. 갈대밭 시신 발견 현장에 출동한 경찰들은 무기력하게 대화를 주고받는다. “CCTV는 아예 없고, 앞에 있는 두 대는 오래돼서 작동을 안 한대.” “문주시에 작년에 200대 충원했잖아요.” “시내 유흥가에 집중해서 깔았죠. 읍 단위까지 순번이 올 일은 없고. 재개발한다니까 다 때려 부술 동네에 새 기기 달아준다는 게 아까우셨겠지.” 문주시의 관심이 재개발 프로젝트에 집중된 사이, 누군가는 그렇게 소리 없이 사라지고 잊혀진 채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백골로 발견된다.

 

드라마에서 연쇄살인마 외에 가장 ‘괴물’에 가까워 보이는 이들은 문주시 재개발을 주도하는 시의원 도해원(길해연)과 JL건설 대표 이창진(허성태)이다. 시장직에 도전하는 도해원과 개발 이익을 노리는 이창진은 재개발을 일정대로 추진하기 위해 연쇄살인 사건을 적극적으로 축소하고 은폐하려 한다. <괴물>은 이 둘을 사건의 용의자선상에 먼저 올려놓은 뒤, 실은 이들의 욕망이 문주시민 대부분의 욕망과 일치한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다시금 ‘범인 찾기’ 플롯이 놓치는 시대의 악을 환기한다. “옆 동네는 아파트 올라가는데 우리는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돼.” “개발 좀 할랬더니 딱 이 타이밍에 그놈의 계집애는 또 어디로 튀었는지, 재수 없어 죽겠어.” 개발 설명회에 모인 주민들의 말은, 문주시 전체가 이익을 위해 살인의 은폐에 동조했다는 것을 노골적으로 나타낸다. 표면적인 살인사건 너머로, 시대가 적극적으로 은폐한 죽음의 비극을 응시한다는 점에서 영화 <살인의 추억>이 연상되기도 하는 대목이다.

 

범인 추적 과정의 장르적 쾌감에 초점을 두지 않는 <괴물>의 태도는 드라마의 가장 큰 미스터리 중 하나인 이유연(문주연) 시신의 행방이 밝혀지는 장면에서도 잘 드러난다. 실종된 동생을 20년 동안이나 찾아 헤매던 주인공 이동식(신하균)은 유연의 시신을 마침내 지하실 벽에서 발견한다. 슬픔도 잠시, 동식은 유연의 사인이 기존 사건의 살해방식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알고 망연자실한다. “이 정도 다발성 골절이면 어떤 미친놈이 차로 여러 번 친 거야. 죽으라고.” 유연을 이처럼 잔혹하게 살해한 범인은 누구인가. 다시 한번 사람들의 시선이 범인의 정체에 쏠릴 때 드라마는, 그러나 전혀 다른 질문을 던진다. “2000년 그때, 이유연씨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이 질문은, ‘중요한 건 누구냐가 아니’라는 동식의 말과 ‘가해자에게 서사를 줘서는 안 된다’는 담당 형사 오지화(김신록)의 말과도 유사한 의미를 지닌다. 더 중요한 것은, 가해자 찾기에 집중하는 사이 뒤로 밀려나 잊혀진 피해자들의 고통에 있다. 극 초반, <괴물>의 카메라가 담아내던 문주시 재개발 촉구 현수막 아래에는 다 낡아빠진 또 하나의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실종된 우리 유연이 찾아주세요.” 그 간절한 호소, 하지만 대부분이 외면해왔던 그 호소를 <괴물>은 잊지 않고 응답한다.

 

요컨대 <괴물>은 범인을 ‘악마화’하는 데 집중하며 정작 피해자들의 상처는 놓치고 마는 한국 수사물의 장르적 관행에 반성을 요하는 작품이다.

 

김선영 TV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