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영의 드라마토피아

2020년 한국 드라마 속의 현실적인 괴물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스위트홈> 장면. 넷플릭스 제공

한국 드라마사에서 올해만큼 많은 괴물이 출현한 시기가 또 있었던가.

 

어둠의 주술이 키워낸 악령(tvN <방법>), 굶주림에 지쳐 인육을 먹고 죽었다 되살아난 좀비(넷플릭스 <킹덤>), 욕망과 사념이 만들어낸 각양각색의 젤리(넷플릭스 <보건교사 안은영>), 악한 영혼을 숙주로 삼는 살인귀(OCN <경이로운 소문>), 그리고 욕망과 분노가 낳은 크리처(넷플릭스 <스위트홈>)까지 모습도 다양한 괴물들이 곳곳에서 출몰했다.

 

이는 장르물의 진화가 만들어낸 결과물이기도 하지만, 하나같이 지금 한국 사회의 어두운 현실에서 발아한 괴물들이라는 데 더 주목할 만한 지점이 있다. 말하자면 이 괴물들은 하늘에서 갑자기 뚝 떨어진 비현실적 존재들이라기보다 우리 현실의 그림자에 가깝다.

 

가령 가장 초현실적 장르인 오컬트드라마 속의 악귀들이 오히려 인간의 모습과 제일 가깝다는 것은 꽤 흥미롭다. <방법>에 등장하는 악귀 진종현(성동일)은 국내 최대 IT 기업 회장의 탈을 쓰고 있다. 잔혹한 살인을 막강한 자본과 권력으로 뒤덮는 그의 악행은 범죄스릴러에서 권력형 비리를 저지르는 사이코패스 재벌의 범죄와 그리 다르지 않다. <경이로운 소문>의 악귀들도 마찬가지다. 악귀 중 하나인 건설회사 사장 송만호(김광식)의 범죄는 이른바 ‘맷값 폭행’으로 대표되는 재벌들의 갑질을 연상시킨다. 권력형 범죄자들만 악귀로 묘사되는 것은 아니다. 약자들의 억눌린 분노와 타인에 대한 무분별한 혐오가 ‘악귀화’를 이끌어내기도 한다. 이들 드라마 속에서 악귀와 인간의 경계는 매우 희미하다.

 

이 같은 성격은 외양이 인간과 확연하게 구분되는 괴물들의 경우에도 그대로 유지된다. 예컨대 <킹덤>에서 좀비 바이러스 확산의 근원에는 부패한 권력이 있었다. 궁궐의 실세인 영의정 조학주(류승용)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무능한 왕을 좀비로 되살리고 괴물왕의 살인 행각은 결국 조선의 땅끝까지 역병을 퍼트리는 계기가 된다. 가뜩이나 두 번의 전란으로 절박한 생존 본능만 남아 있던 백성들은 왕이 살해한 시신을 나눠 먹었다가 좀비로 변한다.

 

이들은 죽은 뒤에도 끊임없는 굶주림에 시달리며 인육을 갈구한다. 살아있을 때도, 죽어서도 그들을 둘러싼 현실은 지옥이다. 그런가 하면 <보건교사 안은영>의 젤리 괴물은 인간의 억압된 욕망과 사념에서 탄생한, 분신과 다름없는 존재로 그려진다. 교정 곳곳에 널린 젤리들은 억눌린 성적 에너지, 입시경쟁에 대한 강박과 좌절, 가난에 대한 혐오, 장애인 및 소수자에 대한 혐오 등 학교 안에 갇힌 10대들의 어둡고 뒤틀린 내면을 비춘다.

 

이 같은 괴물들의 특징은 최근작인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스위트홈>에서 한층 명확하게 드러난다. 이 작품 속 괴물들은 가장 기괴한 모습을 하고 있지만, 실상은 인간들의 강렬한 욕망이 크게 부풀린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과 괴물의 경계는 더 희미해진다. 이를 잘 보여주는 존재가 주인공 현수(송강)다. 잔혹한 학교폭력의 피해자로 트라우마를 이기지 못하고 자신을 방 안에 가두었던 현수는 가족까지 잃은 뒤 완전히 고립된다. 절망 속에서 극단적 선택을 결심한 현수는 곧 자신에게 ‘괴물화’ 증상이 나타나고 있음을 깨닫는다.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 순간, 현수는 고립에서 빠져나와 타인을 구하기 시작한다. 괴물화가 진행되고 나서야 그는 비로소 어둠으로부터 멀어진다.

 

한국 사회의 괴물 소재 드라마가 초자연적 판타지라기보다 근복적으로는 현실적인 재난스릴러에 더 가까운 성격을 띠는 것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그 괴물들은 우리와 명확히 구분되는 절대 악이 아니라 우리가 몸 담고 있는 한국 사회의 구조적 위기와 불안에서 비롯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현실 인식이 괴물이라는 소재를 장르적 쾌감으로만 소비할 수 없게 만든다. 이들 드라마는 저 너머의 초현실적 악이 아니라 지금 우리 곁에 있는 현실의 어둠을 응시한다.

 

김선영 TV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