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영의 드라마토피아

‘학원괴담’의 부활

<보건교사 안은영>은 혐오가 지배하는 주류 사회를 광기에 찬 괴물의 세계로 그려낸다. 

올해 드라마계 최고의 문제적 공간은 학교다. 상반기에는 교사의 ‘노동자성’을 본격적으로 그린 tvN <블랙독>, 전망 없는 청소년들의 현실을 잔혹한 범죄스릴러 문법으로 풀어낸 넷플릭스 <인간수업>과 같은 수작들이, 기존 학원물에서 채 보여주지 못한 학교의 입체적 얼굴을 조명했다. 하반기 드라마 속에서 학교는 그 어느 때보다 어둡고 냉혹한 얼굴을 드러낸다. 넷플릭스의 판타지물 <보건교사 안은영>과 호러물 <도시괴담>, 시즌(Seezn)의 호러 시리즈 <학교기담> 등은 하나같이 유령과 괴물들이 배회하는 학교를 그린다.

 

이들 세 작품은 ‘학원괴담’의 문법 안에서 우리 사회 부조리의 압축판으로서 학교를 담아낸다. 먼저 두드러지는 것은 이 장르의 가장 전통적 주제인 입시경쟁의 불안과 공포다. 이는 공통적으로 교실의 빈자리와 교내의 거대한 균열을 통해 드러난다. 가령 <도시괴담> 시리즈의 1화 ‘틈’은 교실의 빈자리에 놓인 국화 한 송이를 비추며 시작된다. 교내 경시대회 2등에 머문 박서희는, 1등이었던 김지예의 빈자리를 초조히 바라본다. 안절부절못하던 서희가 화장실을 핑계로 교실을 빠져나오자, 지예의 원혼이 그 뒤를 따른다. ‘틈’은 그렇게 입시경쟁이 지배하는 현실을 뚫고 나오는 극도의 불안에 관한 이야기다.

 

<학교기담>의 두 번째 에피소드 ‘오지 않는 아이’ 역시 교생실습을 나온 주인공 수아가 담당 교실의 텅 빈 의자를 바라보는 장면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빈자리를 불안하게 바라보는 수아와 달리, 무심한 담임 교사는 “장기 미출석 학생이니 없는 셈 치라”고 말한다. 입시 외엔 아무 관심도 없는 교실 안에서 소외된 아이의 분노는 괴물로 자라난다. 두 작품의 빈자리는 <보건교사 안은영>에서 거대한 싱크홀의 이미지로 발전한다. 경쟁의 스트레스와 억압에 눌린 아이들은 어느 순간 집단 광기에 휩싸여 옥상으로 달려간다. 학원물에서 성적을 비관한 아이들이 끊임없이 뛰어내리던 그 옥상에서, 은영은 겨우 학생들을 구하지만 다 봉합되지 못한 분노와 슬픔은 교정에 거대한 구멍을 남긴다.

 

균열의 이미지가 입시경쟁의 불안과 공포와 같은 학원물 전통의 주제를 보여준다면, 최근의 학원괴담에서 한층 뚜렷해진 주제는 혐오와 차별에 대한 문제의식이다. 예컨대 세 작품에는 가난 혐오가 일상으로 자리한 현실이 펼쳐진다. 가령 <도시괴담> 5화 ‘맞춤 구두’는 반 티셔츠를 살 돈이 없어서 아이들에게 집단 괴롭힘을 당하던 학생의 극단적 선택과 복수를 보여준다. <학교기담> ‘오지 않는 아이’에도 차별과 학교 폭력에 시달리는 사회취약계층 아이가 등장한다. <보건교사 안은영>에서는 임대아파트에 산다는 이유로 같은 농구부원들로부터 집단 따돌림과 폭행을 당하는 학생의 에피소드가 그려진다.

 

사회적 소수자를 혐오하는 사회에 대한 비판도 두드러진다. <학교기담>의 첫 번째 에피소드인 ‘8년’은 싱글맘인 어머니와 함께 살아가던 여학생 살인사건을 다룬다. 생계를 위해 노래방 도우미로 일하는 엄마와 함께 묶여 ‘문란하다’는 소문에 휩싸인 명진은 억울하게 죽은 뒤에도 2차 가해를 당하고 복수의 유령으로 다시 태어난다. 그런가 하면 <보건교사 안은영>은 혐오가 지배하는 주류 사회를 광기에 찬 괴물의 세계로, 그로부터 소외된 소수자들의 세상은 연대의 세계로 그려낸다. 괴짜 같은 싱글여성 안은영, 한쪽 다리가 불편한 한문 선생 홍인표, 아이들로부터 ‘헤프다’는 평을 받는 성아라, 옴잡이 혜민 등 소위 ‘정상성’에서 벗어난 인물들은 그들에게 냉혹한 세상의 위협 속에서 가까스로 손을 잡고 버틴다.

 

학원괴담의 유행은 앞으로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넷플릭스는 곧 좀비 스릴러 학원물인 <지금 우리 학교는>을 공개할 예정이고, <학교2013>의 연출을 맡았던 이응복 감독은 학교폭력 피해자인 은둔형 외톨이 고등학생이 더 큰 괴물들의 세상과 대면하는 생존 스릴러 <스위트홈>을 준비 중이다. 이러한 작품들 속에서 학교는 점점 더 폐허에 가까워진다. <보건교사 안은영> 시즌1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무너진 목련고 건물처럼, 부활한 학원괴담은 출구 없는 청소년들의 현실을 비춘다.

 

<김선영 TV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