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영의 드라마토피아

[김선영의 드라마토피아]청춘드라마 속 ‘오늘의 얼굴들’

 

JTBC <이태원 클라쓰>(사진 왼쪽)와 현재 방영 중인 tvN <청춘기록>.

 

청춘드라마는 유독 배우의 얼굴로 기억되는 장르다. 청춘스타라는 호칭을 떠올려 보면 알게 된다. 청춘스타는 단순히 젊은 스타들에게 부여되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의 청년정신을 대변하는 작품 속 배우들에게 흔히 주어지는 수사다. 예컨대 과거 개발시대 열혈 청춘의 표상과도 같았던 MBC <사랑과 야망>의 이덕화, 1990년대 세련되고 당당한 신세대의 표상이었던 MBC <질투>의 최진실과 KBS <느낌>의 손지창, 이본, 그리고 2000년대 이후 불확실성 시대의 고민하는 청년들을 그려냈던 MBC <커피프린스 1호점>의 공유, 윤은혜 등이 대표적이다. 2010년대 전후로 영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SBS 드라마 <패션왕> 등 많은 출연작을 통해 전망 없는 시대 청춘들의 좌절을 보여준 유아인도 빼놓을 수 없다.

 

그렇다면 지금 동시대의 청년을 표상할 만한 얼굴은 누가 있을까. 한동안 답하기 어려웠던 이 질문에, 올해의 드라마들이 응답하기 시작했다. 상반기 최고 화제작 중 하나인 JTBC <이태원 클라쓰>와 현재 방영 중인 tvN <청춘기록>이다. <이태원 클라쓰>는 아버지를 잃고 억울하게 전과자까지 된 청년 박새로이(박서준)가 자신의 삶을 짓밟은 요식업계 거물에게 복수하기 위해 밑바닥에서부터 차근차근 꿈을 이뤄가는 모습을 담았다. <청춘기록>은 목수 아버지와 가사도우미 어머니 아래서 가난하게 자란 청년 사혜준(박보검)이 배우로 성공하려 애쓰는 과정을 보여준다.

 

두 작품 모두 ‘흙수저’ 청춘들의 꿈을 향한 도전기라 할 수 있다. ‘흙수저’는 2010년대 들어서 N포 세대라는 말과 함께 우리 시대 청년들의 가난과 절망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키워드로 자리매김했다. 다만 <이태원 클라쓰>와 <청춘기록>이 흥미로운 이유는 단순히 계급격차의 비애만으로는 다 설명되지 않는 청년들의 상처를 들여다본다는 데 있다. 바로 자존감의 문제다. 지금의 청년들을 가장 괴롭히는 것은 가난한 현실 자체보다 그 때문에 삶의 다른 가능성을 제한하고 존엄마저 무시하는 거대한 가스라이팅의 세계다.

 

가령 <이태원 클라쓰>에서 악역인 장대희(유재명)의 최종 목표는 자신의 소신을 끝까지 굽히지 않는 박새로이의 무릎을 꿇게 하는 데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이득이 없다면 고집이고 객기일 뿐”이라는 장 회장의 일갈처럼 세상은 박새로이에게 끊임없이 무릎을 꿇으라 외치며 위계적 질서 안에 포섭하려 한다. 하지만 박새로이는 ‘내가 나로 사는 것’의 원칙을 놓치지 않는다. “어떤 부당함도, 누군가에게도 휘둘리지 않는, 제 삶의 주체가 저인 게 당연한, 소신의 대가가 없는 그런 삶을 살고 싶습니다”라는 박새로이의 말은 자존감에 상처 입은 동시대 청년들에게 위로를 주는 명언으로 회자되고 있다.

<청춘기록>에서도 유사한 상황이 반복된다. 배우가 되고 싶어하는 혜준은 계급의 장벽보다 그를 무시하는 세상의 말에 더 상처 입는다. ‘남을 밟고 올라서는 경쟁 없이도 잘해낼 수 있다’는 혜준의 말은 객기로 치부당한다. 그나마 그를 지지해주는 매니저마저 현실의 무게를 직시하라면서 조언한다. “갖고 태어난 거 없으면 평생 가난하게 살아야 돼. 나아지지 않아. 보통 그걸 서른이 넘어서 깨달아. 20대는 꿈꿀 수 있고 이룰 수 있다는 환상도 갖거든. 똑똑한 애들은 20대에도 깨달아. 이룰 수 없는 꿈보다 돈을 벌자.” 하지만 혜준의 대답 역시 박새로이처럼 “난 내가 지키고 싶은 걸 지키면서 할 거야”였다.

 

이는 혜준의 연인이자 친구인 안정하(박소담)에게서도 발견되는 특징이다. 대기업에 입사했던 정하는 꿈을 이루기 위해 퇴사하고 스타일리스트의 길을 걷지만, 끊임없이 위계질서에 부딪히고 “주제 파악을 하라”는 말에 좌절한다. 상처 입은 정하와 혜준이 끌리게 된 결정적 계기는 ‘넌 특별하다’고 서로에게 말해주는 순간이었다.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존감이다. 가난은 버텨낼 수 있어도 이를 빌미로 존엄을 짓밟히는 것은 견딜 수 없다.

 

<이태원 클라쓰>와 <청춘기록>은, 가진 것 별로 없는 청춘들에게 남은 유일한 무기가 자존감이라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두 작품은 꿈보다 돈을 좇으라고 훈계하는 세상을 향해 ‘난 나로 살겠다’고 외치는 배우들의 얼굴로 오래 기억될 듯하다.

 

<김선영 TV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