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메르스, 식당, 자영업’

각기 생업에 힘들고 고통스러운 세상이다. 이 좁은 땅에서 돈 버는 이들 가운데 셋 중 하나는 자영업자이니, 특별히 식당업자가 더 힘들 것도 없다. 다들 옛 시처럼 “이러다가 끝내 못 가지, 못 가도 어쩔 수 없지” 하는 심정이다. 이런 판국에 메르스가 덮쳤다. 정확히 말하면, 메르스에 대한 무책임한 당국의 대응이 더 무섭다.

벌써 식당 매출이 줄고 있다. SNS 친구들의 다수가 식당업자인데, 악 소리와 곡소리가 들린다. 잘해야 서너 달 이러고 말 텐데 엄살 아니냐고 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식당은 대개 한 달 벌어 한 달 먹고산다. 두어 달만 매출이 쑥 빠져도 방법이 없다. 이미 더 이상 물러설 것도 없는, 문자 그대로 탄광 막장에 들어간 듯한 식당들에는 치명타다. 식당뿐 아니다. 동네 주택가에도 한 집 걸러 하나씩 생기는 카페는 어쩔 텐가. 모임과 약속이 미뤄지고 테이블이 논다. 관련 산업도 일제히 부담을 떠안는다.


일례로 수산시장을 가보니 확실히 매기가 한산하다. 생산 현장에서는 도시로 올리는 물량을 조절할 분위기다. 수산물 실어다 식당에 대는 용달 아저씨도 일감이 벌써 줄었다고 한다. 생산과 소비 사이에 있는 모든 경제활동이 활력을 잃게 된다. 특히 애초에 나라 덕 보고 산 적이 없는 자영업자들의 위기다. 재래시장 살리자는 말은 들어봤어도 자영업 살리잔 말은 나오지 않는다. 그야말로 각자도생이다. 자영업이란 말에는 스스로 알아서 벌어먹는다는 뜻이 있다. 그러나 한국처럼 자영업자가 기형적으로 많은 구조는, 곧 이들의 몰락은 경제 전체의 부담이 된다. 자영업은 경제라는 이름의 심장을 돌리는 펌프 역할을 한다. 돈 좀 벌면 쌓아두거나 부동산에 투자해서 땅값이나 올리는 재벌들과 달리 자영업은 스스로 팔면서 동시에 소비한다.

최근 경제 뉴스에서 가장 크게 취급받는 게 바로 가계대출 문제다. 이것이 위험수위를 넘었다고 하는데, 실은 이 대출의 다수가 자영업자다. 자영업은 현장 산업 단위라기보다, 그 자체로 하나의 가계(家計)이기 때문이다. 자영업 대출이 이미 150조원을 넘었다고 한다. 시설 투자도 있겠지만, 가게를 돌리지 못해서 생활비며 운영비며 빚으로 메우고 있다는 뜻이다. 포털에 ‘메르스 식당 자영업’이라는 검색어를 넣어보니, 엄청난 글들이 올라오고 있다. “월요일부터 매출이 반토막, 다른 곳도 그런가요?” “메르스 타격 받고 있어요ㅠㅠ” “자영업 다 죽게 생겼어요”라는 글이 막 쏟아진다. 이런 호소를 듣고도 “아 몰랑” 하는 사람들에게 하소연해봐야 소용없다는 것도 다 안다. 자영업에 대해 무언가 대책이 있는가 찾아봤다. 영세 자영업자가 의심환자로 격리되어 생업에 지장을 받을 경우 4인가족 기준으로 돈 100만원 정도 준다는 내용이다. 아주 장하다. 그 입에 두른 최고급 마스크, 영원히 벗지 말고 봉하라.


박찬일 | 음식칼럼니스트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다시 생각하는 IMF의 공포  (0) 2015.06.18
우래옥 냉면  (0) 2015.06.11
금값 삼겹살, 서민 주름살  (0) 2015.05.28
여름 국수  (0) 2015.05.21
빙수  (0) 2015.05.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