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다시 생각하는 IMF의 공포

지난번에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로 자영업에 심각한 위기가 올 것이라는 글을 썼다. 그 예상이 들어맞지 않기를 바랐다. 불행히도 현실이 되고 있다. 예약이 줄줄이 취소되고 있고, 신규 예약은 없다. 심리적 공포가 더 큰 문제라고 해도, 사망자와 확진자가 속속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 마침내 집권당 대표가 곰탕집에 가고, 대통령은 시장에 들러 메시지를 전할 지경에 이르렀다. 추경 조기 집행 얘기도 나온다. 문제는, 이 사태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른다는 막연함이다. 메르스 확산에 대한 모델도, 예측도 다 빗나가고 있다. 당장 먹고사는 현장에 직격탄이 떨어지고 있다.

요즘 식당은 때아닌 휴가 바람이 분다. 놀고 있으니, 여름휴가를 당겨서 집행하는 것이다. 전국이 메르스에 벌벌 떨고 있는 와중에 어디 가서 휴가를 즐길 것인가.IMF 외환위기 이후 거의 듣기 어려웠던 용어도 나온다. 무급휴가다. 이미 집행을 시작한 서비스업이 꽤 된다고 한다. IMF 외환위기는 서민경제를 파탄냈다. 중산층이 붕괴되면서 트라우마를 만들어냈고, 그것은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다. IMF 외환위기가 던져준 가장 큰 교훈은, 우리의 지금 삶이 지속적일 것이라는 환상을 버리라는 참담한 자각이었다.


공포스럽게도 국가가 통제에 실패한 메르스는 그 죽음의 신을 다시 불러오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절박한 상황에서 미흡하지만 여러 처방이 민간에서 나오고 있다. 컨트롤타워를 믿지 못하니 시민이 나설 수밖에 없는 것인가. 이명박 정부에서 광우병 사태가 터졌을 때 내 새끼를 지키기 위해 나섰던 유모차 부대의 심정을 알 것 같다. 서비스업계에서 가장 먼저 제기하는 지원책은 부가세 부분이다. 부가세를 일시적으로 면제해 달라는 주장이다. 근래에 적어도 30%에서 절반 정도 줄어든 매출에 따른 영업 손실을 벌충하기에는 모자라지만, 그렇게라도 된다면 회생을 준비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서비스업은 두 달 정도 이런 분위기로 가게 되면 도산이 속출할 게 뻔하다. 대형이든 소형이든 마찬가지다. 버티지 못할 상황에 이르면 임금 체불과 해고가 이어진다. 이미 우리는 이 모델을 가지고 있다. 바로 IMF 외환위기 당시의 경험이다. 생산 수단을 가지고 있지 않는 서비스업에 가장 큰 충격이 가해졌다. 실체적 충격이 닥치기 전에 사람들은 공포에 의해 지갑을 먼저 닫는다. 이런 위기 상황에서 서비스업이 가장 먼저 고통을 겪게 되는 이치다. 뒤늦게 처방을 내놓지 말고, 지금 당장 집행할 수 있는 것은 다 집행하라. 식당의 종사원 다수가 청년이니, 당신들이 그토록 외치던 청년 실업 대책과 관련된 문제이기도 하다. 저임금이나마 고용되어 애쓰는 이들에게 해고의 고통까지 떠안기는 것은 참담한 일이다. 자, 무얼 더 망설이는가.


박찬일 |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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