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방송에서 백종원씨가 쓰는 중국식 식도가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방송이 참 대단하다 싶다. 중국요리 전래 역사 130여년 동안 쓰고 있던 칼을 이제야 대중이 주목하다니!

우리나라는 다른 지역의 화교와 달리 산둥 사람들이 많다. 1882년 중국과 불평등협정을 맺은 후 초기에는 광둥과 상하이의 상인들이 몰려오다가 일제강점기 내내 산둥 지역에서 노동자들이 많이 몰려왔다. 화교는 원래 세 가지 칼을 잘 다뤘다고 한다. 이발사의 면도칼, 재단사의 가위, 그리고 요리사의 칼이었다. 이를 두고 ‘산바다오(세 가지 칼)’라고 하여 그들의 높은 손기술을 의미했다. 실제 노인들에게 물어보면 화교가 하는 이발소와 양복점이 전후에도 꽤 있었다고 증언한다. 1960~1970년대 고도성장기에 중국집이 잘되면서 화교 식당이 엄청나게 늘었고, 자연스레 그들이 다루는 칼은 요리용 칼로 좁혀졌다.

사이따오, 즉 요리용 칼이라는 단순한 이름의 이 칼은 나무 손잡이에 묵직한 사각형이다. 중국요리사들은 이 칼로 대부분의 요리를 처리한다. 닭과 돼지를 잡고, 뼈를 바른다. 마늘도 찧고, 새우 등에 칼집을 넣어 내장을 빼내기도 한다. 내 친구 중국요리사는 생선회도 뜨는데, 날카로운 일식 칼 못지않게 섬세하게 잘린다. 그 둔해보이고 큼직한 칼로 그처럼 세밀한 작업을 하는 것을 보면 감탄을 금치 못한다. 무거운 칼이지만, 실제 쥐고 요리해보면 묘한 쾌감이 있다. 처음에는 무거워서 제멋대로 노는데, 익숙해지면 칼이 스스로 요리하는 것처럼 변한다고들 한다. 칼의 무게중심 배분이 좋고, 스스로 적당한 무게가 있으니 힘들이지 않아도 재료가 썰린다는 것이다. 날은 생각보다 아주 날카로워서 조심스럽게 다뤄야 한다.




중국집은 흔히 화려하게(?) 불을 다루는 요리사가 최고라고 생각하지만, 오랫동안 주방을 장악한 것은 사이따오를 쥐고 있는 ‘칼판’이었다. 불판의 ‘국자’보다 더 권력 있는 자리였다고 한다. 재료를 가늠하여 배분하고, 불판에서 잘 요리할 수 있도록 최선의 기술과 방법으로 썰어서 올려주는 일이 바로 칼판이었다. 칼과 불, 차가움과 뜨거움. 이 대비되는 성격이 바로 오늘날 중국요리의 거대한 세계를 이루는 극적 요소였다.

이제 중국요릿집이 소규모화되고 배달 중심으로 바뀌면서 칼판의 권세는 저물었다고 한다. 튀기고 볶는 요리 중심으로 바뀌고 섬세한 요리가 점차 없어지면서 칼판이 힘을 잃었다는 것이다. 칼은 정말 요리의 핵이요, 고갱이다. 흔히 내게 요리 잘하는 법을 물어보면, 나는 즉시 ‘칼을 바꾸라’고 말한다. 명필은 붓을 가리지 않는다는 말도 옛말이다. 좋은 칼은 요리에 힘을 실어준다. 요리에 더 집중할 수 있고, 효율을 높인다. 쌍둥이니 삼지창이니 하는 칼도 좋고, 일본에서 만든 양식 칼도 좋다. 한국형 칼은 쉽게 접할 수 없지만, 대전 칼이라고 하는 것이 잘 들고 요리도 수월하다. 시골 장터를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구입한 그 칼의 쓸모는 상상 이상이었다. 요리의 시작, 칼이다.



박찬일 |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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