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고기의 추억

지금처럼 무더운 날, 옛날의 추억 한 자락이 피어오른다. ‘마이 카’도 변변한 대중교통도 없던 때다. 사십 몇 년 전의 일이다. 어머니는 불고기를 재고, 돗자리와 짐을 들고 버스에 올랐다. 북한산 계곡으로 피서를 갔던 것이다. 조금 사는 집들이 만리포니, 연포해수욕장이니 하는 곳으로 갈 때 우리의 피서지는 멀지 않은 북한산이었다. 조금이라도 더 걸어올라가면 사람이 적었고, 그래서 기를 쓰고 계곡을 탔다. 누이들은 커다란 수박을 들고 올라가느라 땀깨나 흘렸던 것 같다. 맞춤한 물웅덩이가 있는 곳에 짐을 풀었다. 수박을 띄워 놓고 아이들은 그대로 물에 들어갔다. 얼음장처럼 차가운 물속에 몸을 담그면, 더위는커녕 이가 딱딱 시리게 추워졌다. 물은 또 얼마나 맑던지. 지금처럼 생수 같은 걸 구할 필요도 없었다. 손 바가지를 만들어, 그대로 떠 먹었다. 그렇게 놀고 있으면 맛있는 냄새가 살살 났다. 어머니가 불고기를 굽는 것이었다. 휴대용 가스레인지도 없었고, 아마도 동네에서 등산용 버너를 빌려 갔던 것 같다. 노란 금속제에 불을 붙이려면 밸브를 열고 펌프질을 해야 하는 옛 장비 말이다. 불고기 맛은 꿀맛이었다. ‘소독저’라고 부르던 나무젓가락을 딱딱 쪼개서 맛있게 고기를 구웠다. 다시 배를 꺼뜨리려 물속에 들어갔다. 물장구를 치면서 올려다본 하늘은 무심하게 파란색이었다.





나중에 북한산에 취사, 야영이 금지되면서 이런 풍경은 그야말로 사라진 과거가 되었다. 간혹 등산을 하러 북한산을 오를 때, 찌는 더위에는 당장이라도 옛 생각이 나서 물속으로 다이빙하고 싶었다. 피서지에서 먹는 음식 문화도 세상이 변하듯 달라졌다. 불고기가 어느 해부터인가, 어머니의 요리 찬합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사람들은 정육점에 가서 삼겹살을 끊어 여행을 떠났다. 아이스박스와 요리도구를 차에 싣고 다니면서 요리가 다양해졌다. 삼겹살은 필수, 바비큐는 선택이 됐다. 고기를 못 먹어 한 맺힌 과거가 많아서일까, 어떻게든 놀러 가서도 고기를 먹는다. 한여름은 고기 수요가 몰리는데, 오히려 공급은 준다. 소, 돼지라고 해서 여름을 타지 않을 리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적은 자본의 축사에 어디 변변한 냉방이 되겠는가. 선풍기를 돌리고, 어떻게든 동물들이 여름을 나길 바랄 뿐인 것이다.

고기 값이 많이 올랐다. 삼겹살은 물론이고, 쇠고기도 산지 도축량이 눈에 띄게 줄었다고 한다. 한우 값이 뛰니 수입 쇠고기가 풀린다. 삼겹살도 마찬가지다. 수입 삼겹살이 시장을 장악한다. 그나마 피서 떠나 고기라도 구울 수 있는 사람들은 다행이겠다. 휴가비를 따로 주는 직장이 별로 없는 세상, 휴가날 받아서 집에서 수박이나 쪼개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겠는가. 찜통 같은 더위는 이렇게 이중의 고통을 주곤 한다. 이렇게 세월은 또 흐른다.


박찬일 |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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