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계란의 운명

짚으로 엮은 계란 꾸러미를 최근에 본 적이 있다. 일종의 복고다. 실제 유통하려고 만든 것은 아니고, 멋이다. 동네에서 얻은 계란이 가겟방에 나오던 시절에는 짚으로 엮어서 냈다. 짚이 사라지고 계란의 출처도 사라졌다.

이제는 어디에서 오는지도 모르고, 닭이 낳는 것인지 아니면 알 낳는 기계의 생산품인지 아는 이가 없다. 종이팩에 담겨 제각기 그럴듯한 선전문구에 가려져 마트에서 팔린다. 더러 좋은 계란이라고 ‘목초를 먹여 기른 닭이 낳았다’고 쓰고 있다.

그렇다면 다른 어미 닭은 목초 말고 뭘 먹는다는 말인가. 사람들은 사서, 무심하게 열량과 콜레스테롤을 따져 찜을 하거나 팬에 지진다. 저럴 바에야 온전히 둥그런 계란 모양을 하고 팔릴 일도 없겠다 싶다. 삶은 채 냉장해서 팔아도 그만이고, 노른자가 무서운 이들에게는 그 양을 줄여서 적당히 섞은 것을 팩에 담아 팔아도 그만이겠다는 생각도 든다.Z

아닌 게 아니라, 재료유통상의 취급목록을 보면 희한한 계란이 있다. 난황, 난백, 전란 이런 말이 나오는 것이다.





어미 닭이 갓 낳은 따뜻한 달걀, 이런 건 동화책에나 있다. 다들 먹고살기 바쁘고 인건비도 아껴야 하니 계란을 사서 깨고 노른자를 분리하고 이런 노동도 사치가 될 때가 있는 것이다. 노른자대로, 흰자대로 구별해서 통에 담겨 유통된다. 사료 먹고 알 낳는 기계로 전락한 어미 닭이 내놓은 계란인지라 껍데기가 약해서 잘 부서진다고도 한다. 이른바 ‘파란’이 생기니, 아예 노른자 흰자로 분리해서 유통하는 것도 있다. 지구상에서 가장 싼, 그러나 완벽하게 보존된 생명의 정수라는 별명을 가진 계란의 현재 운명이다.

내가 요리를 시작한 게 17년 전이다. 그때 계란 값이 기억하건대 100원 살짝 밑이었다. 강산이 두어 번 바뀌었는데 아직도 100원 대다. 물가는 몇 배 올랐는데 계란 값은 실질적으로 더 곤두박질쳤다. 누군가 울고 있을 것이다. 생명(이거나 또는 생명이었던) 서른 개가 담긴 한 판의 값이 국수 한 그릇 값이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계란 먹으면 콜레스테롤 걱정을 한다. 싸서 문제이고, 싸서 많이 먹으면 또 문제라고 한다.

어미 닭은 한 번도 품을 수 없는 알을 일 년에 300개쯤 낳고 알 낳을 힘이 떨어지면 도살된다. 감상주의라고 비난해도 좋다.

그러나 우리가 그렇게까지 계란을 많이 먹어야 하는 것일까. 좀 잘 길러서 한 개에 한 300원이나 400원쯤 한다고 해서 무슨 국가경제나 가계에 주름이 질까. 두 배쯤 오르면 그만큼 덜 먹으면 안되는 것일까. 그래서 닭이나 먹는 우리가 존엄성을 좀 갖고 살면 안되는 것일까. 모자란 내 소견일 텐데, 나는 여전히 그런 ‘감상’에 빠져 있다. 이 불안한 풍요가 실은, 얼마나 지속될 것인지.



박찬일 | 음식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