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냉면 통일

이탈리아에서 친구가 왔다. 한국에서 먹어본 것 중에 인상 깊은 음식이 뭐냐고 물었다. 대뜸 “냉면”이라고 답한다. 그러면서 “짠 아이스크림에 담긴 면”이라고 덧붙였다. 여러 한국 음식을 먹었는데, 냉면만큼은 이해가 안된다고 했다. 도대체 왜 그토록 차가운 육수에 면을 말아 먹느냐는 것이었다. 이탈리아에도 국물에 넣어 먹는 면이 있다. 냉면처럼 고깃국물에 가느다란 스파게티를 말아서 먹는다. 냉면과 흡사하다. 그러나 그것은 뜨거운 국물이다. 차가운 국물이 아무런 맛이 안 나서 무슨 맛인지 잘 느낄 수 없어 먹기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차가운 음식은 맛을 내는 분자가 활성화되지 않아 코와 혀가 맛을 잘 알아채기 어렵다. 그래서 냉면처럼 이가 시리게 차가운 음식은 세계적으로 없다고 한다. 일본의 ‘히야시 우동’이나 중국의 ‘깐빤면’도 한국의 비빔냉면처럼 적당히 차가운 면이지, 얼음 육수에 면을 넣어 먹는 정도는 아니다. 아이스크림이나 셔벗처럼 달콤한 음식이나 얼음처럼 차가운 종류가 발견된다. 이탈리아 친구가 냉면을 이해하자면, 아주 긴 설명이 필요하다. 겨울에 담가 먹는 동치미에서 시작된 얼음 육수의 전통부터 이야기해야 하는데, 참 난감한 일이다. 얼음이 싸게 유통되면서 동치미가 없는 한여름에도 냉면을 먹게 된 저간의 사정, 나아가 정정 불안과 전쟁으로 인해 월남한 실향민에 의해 냉면이 크게 퍼져 나간 역사까지 보자면 한국의 현대사로 풀어야 한다. 나의 짧은 이탈리아어로는 그것을 다 설명할 수 없었다.




얼마 전에 서울시에서 남북교류협력사업 시민 아이디어를 공모했다. 냉면이야말로, 가장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해서 나도 공모에 지원했다. 허술한 제안이었는데 감사하게도 장려상을 받았다. 냉면은 우리 현대사에서 가장 아픈 음식이고, 남북을 하나로 묶는 데 분명히 기여할 수 있는 음식이다. 북에서는 민족 최고의 음식이며 그들의 수도인 평양의 대표 음식으로 놓고 있고, 남에서는 북으로 가지 못하는 최대의 디아스포라 집단인 실향민이 고향을 생각하는 대표 음식으로 냉면을 꼽고 있기 때문이다. 분단 이후 그 냉면은 ‘각자’ 발전해왔다. 평양의 냉면 맛은 그간 드물게 있었던 남북교류를 통해 북에 다녀온 인사들에 의해 남에도 전해졌다. 금강산과 개성 관광으로 맛을 본 사람들도 있었다. 남에서는 여름철 최대의 외식 아이템으로 성장했다. 북한에 연고가 있는 냉면집들은 그 ‘역사성’이 더해져 늘 문전성시를 이룬다. 이 희한한 국수는 그야말로 남북 분단이라는 뼈아픈 눈물의 밥상 위에서 각기 명맥을 이어온 셈이다.

나는 정말로 궁금하다. 이번에 이희호 여사의 방북 사진에서 발견된 평양 평남면옥의 냉면 맛은 어떤지, 옥류관 냉면은 정말 최고인지 말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평양의 맥을 이으면서 남에서 자기 세계를 구축한 우래옥의 냉면 맛을 보여주고 싶다. 남북교류협력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하든, 한민족 냉면축제든 무엇이든 좋다. 냉면 한 그릇 나눠먹자는 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