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제철이 무엇이야

나는 이탈리아 음식을 파는 작은 식당을 한다. 제철에 난 다양한 재료를 쓰는 게 요리의 본령이라고 생각한다. 철마다 어떤 재료가 좋은지 늘 신경을 곤두세운다. 여러 해 그렇게 한 결과 제철 지도가 그려졌다. 수온과 알 수 없는 이유로 들쑥날쑥하지만 생선은 제철이 뚜렷한 편이다. 메뉴를 어떻게 짤지 고민하지 않아도, 시장에 나가보면 흐름을 꿰게 된다. 오징어가 안 잡힌다는 뉴스가 언제 있었느냐는 듯, 시장은 철이 되니 좋은 오징어를 깐다. 삼치도 좋아질 것이고, 고등어도 기름이 올라 좌판에서 윤기를 뽐낼 것이다.

문제는 채소다. 명색이 이탈리아 식당인데 나는 거의 토마토를 다루지 않는다. 품종상의 한계도 있지만, 도대체 맛있는 것을 만나기 힘들다. 그도 그럴 것이, 산지와 소비자를 잇는 유통에 문제가 있어서다. 토마토는 잘 익으면 물러서 유통에 문제가 된다. 퍼런 놈을 담아서 ‘유통 중에 알아서 익는’ 형국이다. 내 눈앞에 있는 토마토가, 저절로 익은 것인지 길에서 붉어진 것인지 알 수 없다(실은 대개 전자일 것이다).

방울토마토도 마찬가지다. 최근 농장에 가서 방울토마토를 땄다. 자연의 섭리대로, 익어서 막 떨어지려는 녀석들을 입에 넣었다. 뭉클하고 단물이 확 퍼진다. 나도 모르게 먼지도 털지 않고 입에 마구 넣어 씹었다. 잘 익은 과일이 이것 같으랴. 그러나 그 토마토도 아쉬운 것은 마찬가지다. 잘 갈라지지 말라는 것인지, 껍질이 어찌나 두껍던지 과육의 단맛을 충분히 표현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살림 같은 생협에서는 완숙 토마토를 판다. 각별히 따서, 큰 수고를 더해야 완숙한 채로 소비자의 손에 넘어갈 수 있을 것이다.





어려운 일이지만, 안되는 일도 아니지 않은가. 다른 나라에 가면, 나는 늘 시장과 소매상을 들른다. 이웃 일본도 그렇다. 특이하게도 이 나라는 소규모 채소가게가 여전히 성업 중이다. 대형 마트의 공세가 없지 않을 텐데, 장사가 잘되는 것으로 보였다. 생산자의 이름과 사진을 박아 넣은, 질 좋은 채소와 과일이 가지런히 윤기 있게 놓여 있었다. 대개는 가게와 가까운 밭에서 나오는 농산물이라고 한다. 그렇구나! 빨갛게 익은 토마토를 바로 가져와 팔 수 있는 거리구나. 로컬푸드라는 말이 유행한다. 이 개념은 생산지와 소비지의 거리가 중요하다. 농민은 정성껏 기르고, 가까운 곳에 사는 소비자는 좋은 물건을 사는 것. 이 단순한 이치를 우리는 잊고 있다. 지방 소도시에 깔린 채소나 과일을 보면, 근처에서 생산한 것들이 있을 텐데 멀리서 온 것들이 있다. 전북 정읍에 충청도 복숭아가 보이는 식이다.

토마토가 끝물이다. 여름을 그냥 보내기 아쉬워 토마토샐러드를 만들어 보기로 했다. 생산자에게 특별주문을 했다. 으깨져도 좋으니, 잘 익은 상태에서 따서 보내달라고. 자연의 당연한 이치를 이렇게 특별히 부탁해야 하는 세상이다. 기대에는 못 미치지만, 제법 먹을 만한 토마토가 왔다. 달고 즙이 많다. 이렇게 여름이 가고 있다.



박찬일 | 음식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