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사재기 라면과 꽃게 라면

요 며칠간 한반도에서 벌어진 정치적 긴장은 어제오늘의 일도 아닌데 사람들을 들었다 놨다 했다. 그 와중에도 먹는 얘기는 뉴스를 탔다. 라면 사재기를 둘러싼 소극도 있었고, 유소년 축구 때문에 평양에 머무르는 기자가 송고한 ‘진짜’ 평양냉면 시식기도 눈길을 끌었다. 남북 대치 국면을 언급하면서 손석희 앵커는 경향신문에 연재하고 있는 내 글을 인용하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냉면에 관한 글이었다. 냉면으로 남북 교류 사업을 하면 어떻겠느냐는 내 제안이었고, 손 앵커는 아마도 이 냉면처럼 말랑한 소재로 남북이 만나면 훨씬 긴장 완화에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는 의중으로 소개한 듯하다.

사람은 먹어야 살고, 남북이 죽네 사네 하는 갈등의 본질도 결국은 먹는 문제다. 북쪽에서 포문을 개방한 사진을 싣고, 서해 5도를 공격할 수 있는 공기부양정을 띄웠다는 기사의 말미도 “꽃게 통발은 언제 걷나”라는 연평도 주민의 한숨을 소개하는 것으로 끝났다. 그물과 통발은 널어놓았는데, 출어금지라 걸려든 꽃게가 다 죽게 생겼다는 하소연이었다. 치사하게도, 나는 그 뉴스를 들으면서 ‘이러다가 꽃게 값이 너무 오르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을 했고(꽃게 안 먹는다고 죽을 리도 없는데), 친절한 어떤 기사는 “연평어장 말고도 서해안 일대에서 충분한 양의 꽃게가 공급되어 시장 가격은 안정될 듯”이라고 했다.



연평도 인근 해역에서 꽃게잡이 배가 조업을 하고 있다._경향DB



사태가 진정되고, 신문을 펼치니 대형마트 광고가 눈에 들어온다. 꽃게가 1㎏에 8900원이란다. 연평도에서 꽃게를 다시 잡아들일 수 있게 된 것인지, 안 그래도 꽃게잡이가 원활한 것인지 물량이 많다고 한다. 마음 놓고 어민들이 꽃게를 잡아올리는 모양이다. ‘서해안 긴장 완화 꽃게’라고 이름 붙여야 할지도 모르겠다.


보통 봄에는 암게가 좋고, 가을에는 수게를 높이 친다. 봄 산란 전에 노란 장(알이라고 잘못 생각하는)을 많이 품은 암게는 게장으로 쓰기 좋아서 훨씬 인기가 있다. 당연히 아주 비싸다. 대신 가을에는 수놈이 많이 잡히는데, 알(내장)이 없으니 그 가치를 높이 치지 않는다. 그래서 값이 싸고, 나처럼 게 좋아하는 이에게는 절호의 기회다. 봄에 그 비싼 암게를 쪄서 먹을 만큼 배짱이 없기 때문이다. 씨알이 굵지 않아도 가을 수게는 마릿수 재미로 찜통에 쪄내면 좋다. 발라먹는 수고가 맛을 더한다. 물을 자작하게 잡아 설설 끓이고 게를 눕혀 7~8분 쪄서 내면 살이 입에서 살살 녹는다. 톱밥에 담긴 것보다는 해수에 담겨서 파는 게가 더 좋다고 한다. 톱밥에 담긴 것은 좀 멀리서 온 경우가 많고, 아무래도 톱밥보다는 물속에 풀어놓은 것이 스트레스를 덜 받기 때문이란다.

내 입에는 그 차이를 느낄 수 없어서 톱밥에 담긴 것이 값이 더 헐해서 좋기도 하다. 먹다 남은 게는 토막 쳐서 라면을 끓이면 일품이다. ‘황제라면’이랄까. 아니면 ‘남북평화라면’이라고 불러도 좋겠다. 꽃게 몇 마리 마음 놓고 먹어보는 일이 쉽지 않으니, 이 시절은 얼마나 수상한지.


박찬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