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붉은 등 ‘팔판정육점’


최근 통계에 의하면 자영업자 숫자가 줄어든다고 한다. 철물점, 지물포, 전파사, 전기상, 쌀가게, 사진관 등을 구경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인터넷쇼핑몰과 마트에서 뭐든 살 수 있는 데다 임대료 상승도 이들의 폐업을 부추기고 있다. 특히 주요 상권에서는 식당 등의 유흥업종에 밀려 자리를 지켜내기 힘겹다. 정육점도 그렇다. 빨간 등을 켜고 고기를 팔던 푸줏간의 기억은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가고 있는 것 같다.

어머니 심부름으로 고기를 사러 가면, 우선 부위와 근량을 말해야 했다. 국거리냐, 구이용이냐 같은 것 말이다. 반드시 잊지 말아야 했던 것은 “기름은 빼고요”였다. 돼지고기의 태반이 비계이고, 쇠고기도 거의 그럴진대, 그걸 빼고 팔라니 정육점 아저씨가 얼마나 난감했을 것인가. 어찌어찌 고기를 사들고 가면, 그나마 어지간히 붙어 있는 비계를 보고 어머니가 타박은 하지 않았다.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인데, 비계를 빼달라고 하는 고기 주문이 야박하다는 걸 모르실 리 없었을 것이다. 아주 돼지비계만 사러 가는 일도 있었다. 미국산 콩기름이 ‘식용유’라는 해괴(?)한 이름으로 팔리기 시작하기 전에는 비계는 아주 귀중한 유지(油脂)였다. 그걸로 호떡도 만들고 신김치도 볶았다. 퍼렇게 날이 선 칼로 숭덩숭덩 고기를 썰고, 신문지로 둘둘 말아 담아주던 그 옛날의 정육점 아저씨들 생각이 난다. 동네 정육점은 다 사라져가고, 그이들은 뭘 먹고 살고 있을까. 고기 껍데기에 퍼렇게, 또는 뻘겋게 찍혀 있던 검인 도장도 기억난다. 밀도살 방지용 도장이었다.


고기는 곡물과 함께 도시를 이루는 식량의 핵심이었다. 곡물수송차량은 교통순경도 피해가는 특권이 있었듯이, 고기를 운반하는 차도 ‘지육운반차’라고 딱지를 붙이고 다녔다. 보통 화물이 아니니, 다들 좀 알아봐달라는 유세였다. 그럴 만도 했다. 추석만 되면, 뉴스에선 서민생활과 직결된다는 고깃값 단속 소식이 올라왔다. 물 먹인 소도 단골 기사였다. 그래도 그때는 고기 반 근을 사더라도 사람 사이의 소통이 있었다. 이제 우리는 바코드를 붙여 랩으로 얌전하게 포장된 ‘붉은 살’을 사서 요리한다. 그것이 본디 살아 있는 생명의 어떤 부위였다는 인식 따위는 중요치 않다.





북촌 한쪽에 팔판동이라는 멋진 이름의 자그마한 동네가 있다. 그곳에는 1940년부터 고기를 팔아온 팔판정육점이 있다. 3대 노포다. 엉덩이를 슬슬 쓸어보기만 해도 고기 질을 알아맞혔던 전설적인 정육 명장 이경수 선생에 이어 아들 준용씨가 칼과 고기를 거는 고리를 이어받았다. 대형마트가 막강한 구매력과 시장장악력을 앞세워 고기 시장에서 큰손이 된 이 바닥에서 개인 정육업자로 고군분투 중이다. 여전히 최고의 고기만을 다룬다는 자부심과 프로의 칼솜씨로 윤기있는 가게를 만들어가고 있어서 반갑다. 마실 가듯 삼청동과 북촌 구경을 갈 일이 있거들랑 들러서 고기 ‘한 칼’ 끊어가는 것도 좋겠다.



박찬일 | 음식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