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설탕 무죄

백종원씨가 설탕에 대해 얘기하면서 ‘설탕무죄론’(?)이 나오고 있다. 나더러 묻는다면, 제한적으로 무죄 쪽이다. 물질이 무슨 죄가 있나. 그걸 쓰는 사람이 문제지. 설탕은 ‘3백 유해론’의 원흉처럼 취급된 적도 있다. 흰 쌀밥, 소금, 설탕. 이 세 가지의 ‘하얀’ 물질이 몸에 나쁘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 세 가지 물질 자체로는 과학적으로 별 문제가 없다. 과도하게 먹는 것이 대개 문제를 일으킨다.

이런 문제 제기는 공포를 일으킨다. 이를테면, 흰 설탕이 나쁘다고 하여 황설탕을 쓰는 경우가 있다. 공정을 알게 되면 얼마나 황당한 일인지 알게 된다. 황설탕은 대개 이미 만든 설탕에 황색 당밀 등을 입혀서 가공하는 것이다. 흑설탕도 마찬가지다. 캐러멜 등을 넣어 검게 가공하는 설탕일 뿐, 더 건강하거나 ‘거친’ 설탕은 아닌 것이다. 설탕은 일부 환자를 제외하고 적절하게 먹으면 되는 물질이다. 자연상태에서 나오는 것임은 물론이다. 지나치게 먹어 비만에 걸리거나 치아에 병을 얻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설탕을 많이 소비하고 있는 국가다. 가공식품에는 맛과 촉감을 좋게 하고 보존성도 늘리기 위해 설탕을 넣는다. 웬만한 ‘집밥’에도 언제인가부터 설탕이 많이 들어간다. 조리사시험을 준비할 때, 학원에서 권장 레시피로 연습을 하는데 설탕 안 들어간 양념이 드물다. 설탕 하나, 간장 둘, 고춧가루 얼마 식이다. 일단 ‘맛있다’고 느끼므로 이런 레시피가 널리 퍼진다. 그렇다고 이를 전통이라고 할 수도 없다. 설탕이 얼마나 비쌌는데, 마구 넣었겠는가.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설탕은 엄마 찬장 한 귀퉁이에 숨겨진 보물이었다. 그걸 몰래 꺼내서 그냥 퍼먹거나, 물에 타서 먹었다. 엄마가 아껴 쓰는 재료이므로, 걸리면 치도곤이었다.

설탕은 근대의 산물이다. 아픈 과거도 있다. 흑인 노예를 그토록 유럽제국이 원했던 것은, 설탕 플랜테이션 산업에 쓰기 위함이었다. 그들을 잡아다 서인도제도의 여러 섬에 풀어서 무지막지한 사탕수수 농장 일에 노예로 부렸다. 설탕 값은 아주 비쌌고, 왕궁의 사치에 쓰이는 귀한 재료이자 재정에 큰 이익을 주는 무역상품이었다. 미국 야구선수들의 상당수가 서인도제도 출신의 흑인들인데, 이들이 바로 사탕수수 노예의 후손인 것이다.

설탕은 매우 높은 농도의 당으로 즉각적으로 우리 몸에서 흡수된다. 쾌감을 극대화시킨다. 군대에서 단것을 많이 찾는 것도 심한 스트레스의 역작용일 것이다. 규율과 명령은 스트레스를 유발시키고, 단것으로 그것을 일부 풀어낸다는 것이다. 냄새나는 화장실에서 초코파이를 몰래 먹었던 데는 다 이유가 있는 셈이다. 설탕 강요하는 사회, 설탕 과식하는 사회는 이 피곤한 일상을 강요하는 세상이 만들어낸 것인지도 모른다. 설탕을 무서워하기보다 설탕 권하는 사회를 물리쳐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단것인데 입맛이 쓰다



박찬일 | 음식칼럼니스트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냉면 통일  (0) 2015.08.20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계란의 운명  (0) 2015.08.13
고기의 추억  (0) 2015.07.30
육개장  (0) 2015.07.23
  (0) 2015.07.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