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시급 7530원’과 노동구조

예전에 이른바 패밀리 레스토랑을 취재한 적이 있다. 한 후배의 얘기에서 출발한 취재였다. 그는 한 패밀리 레스토랑의 주방일을 맡고 있었는데, 50여명에 달하는 일꾼 중 정규직이 한 명도 없었다고 했다. 그 후배가 이런 충격적인 말을 했다.

“점심시간이 끝나면 저녁 준비 시간 전까지 모두 가게 밖으로 나가야 해요. PC방이나 공원에 가서 시간을 때우다 오곤 했죠.”

 

스마트폰도 없던 시절이었다. 제 돈 주고 시간을 쓰고 들어왔다. 물론 무급으로. 가게 안에 머물면 시급을 줘야 한다. 그러니 밖으로 내몰았던 것이다. 지금도 나는 들르는 식당이나 카페에서 마주치는 수많은 ‘알바생’ 등을 볼 때마다 그 사건이 생각난다.

 

 

시급 1만원 시대를 열겠다는 게 이 정부의 공언이었다. 어찌어찌 일단 7530원이 되었다. 법대로 주휴수당 등을 다 챙긴다고 가정할 때 하루 10~12시간을 일하고(요식업소의 일반적인 근로시간) 월 21일 근무하면 대략 170만~200만원을 손에 쥐게 된다. 많은가. 좋다. 그런데 실제로 이렇게 ‘알바’에게 일을 시키는 요식업소는 드물다. 제일 바쁜 시간에 서너 시간, 아니면 네댓 시간 일하는 게 대부분이다. 그러니까, 시급 올린다고 했을 때 반대쪽에서 주장한 ‘월급쟁이보다 많이 받는 알바’는 사실상 성립하기 힘들다. 게다가 알바 퇴직금 챙겨주는 경우도 보기 드물다. 법망이 허술하고, 알바가 퇴직금을 받을 만큼 1년 이상 근무하는(근무시키는) 경우도 적기 때문이다.

 

문제는 알바의 시급이 아니다. 정규직이든 계약직이든 풀타임으로 취직하고 싶어도 받아주는 데가 없다. 제발 지방 중소기업 현장에는 자리 많다, 도리어 구인난이다, 하며 혀를 쯧쯧 차는 엉터리 신문 기사는 믿지 말라. 그 일이란 게 실은 외국인 노동자가 하는 직무인 경우가 많다(제주의 이민호군이 했던 일이 바로 허울 좋은 ‘지방 중소기업 일자리’의 상징이다). 또 당신 같으면 자식과 형제더러 알바보다 월급도 별로 많지 않은 지방에 가서 기숙사 생활 하며 일하라고 할 수 있겠는가. 현장 중소기업에는 미안한 말이지만, 이것이 우리 현실인 걸 어쩌겠는가.

 

대기업은 돈을 쌓아두고 있다고 한다. 사내 유보금이니 뭐니 하는 용어를 쓰는데, 한마디로 돈은 있는데 투자도 채용도 안 한다는 소리다. 문제는 시급 인상이 아니다. 취직할 의향이 있으면 사람을 받아줄 노동구조가 먼저다. 제발 시급 1만원이 되면 웬만한 월급보다 많다는 말은 하지 말자. 알바의 평균 근속기간은 고작 5개월이다. 그러니 다시 일자리를 찾아서 무급으로 헤매야 하며, 그 시간 동안 무얼 먹고 방세는 뭘로 내는가. 앞이 캄캄하다. 최근 재미있고도 가슴 아픈 만화 한 권을 읽었다. <내 방구 같은 만화>(기묘나 지음·호랑이출판사)다. 알바를 구하면서 만화를 그리는 이 시대 청춘의 한 모습이다. 기성세대인 내가 너무도 미안해서 책장을 덮지 못했다. 일하고 싶어도 일이 없는 세상. 호부호형은 못해도 좋으니 일을 시켜달라는 세상이라니.

 

<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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