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배달소년

동네의 제법 큰 ‘슈퍼’-옛날엔 구멍가게보다 새롭고 큰 가게를 슈퍼라고 불렀다- 앞에는 짐자전거가 놓여 있었다. 시커멓고 커다란 짐받이가 있으며, 더러 짐받이를 키워서 배추 스무 포기쯤은 너끈히 배달할 수 있는 그런 자전거였다. 육중한 무게감, 그건 소년들의 동경의 대상이었다. 저 자전거를 탄다는 건 어른으로 인증받는 방법이었다. 슈퍼집 아들에게 아부해서 몇몇 녀석들은 그 자전거를 몰았다. 안장에 앉으면 발이 닿지 않으니 옆에 붙어 서서 페달을 돌리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그렇게 동네 한 바퀴를 돌고 오면 아이들이 박수를 쳤다. 짐자전거는 중국집의 필수품이기도 했다. 대개 소년이 그걸 몰았다. 고등학교 같은 건 가지 않고, 중국집에서 먹고 자며 일찍이 사회에 발을 들인 형들. 그 형들이 담배 한 대를 멋지게 피우고는 배달통을 뒤에 싣고 힘차게 페달을 밟는 모습은 진짜 탄성을 자아냈다. 그들도 아직 키가 여물지 않아 겨우겨우 페달에 발을 얹은 처지라 아슬아슬하기는 했지만. 게다가 ‘핸들’에는 우동이나 짬뽕 국물을 담은 노란 양은주전자를 몇 개나 걸고 가고 있었으니. 그때부터 전화로 중국집에 독촉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동네 중국집 홀에 앉아 짜장면을 먹노라면, 전화를 받는 주인의 대답은 늘 이랬다.

 

“벌써 떠났어요.” 그 화교 아주머니가 전화를 끊고는 중국어로 주방에 소리를 치곤 했다. 얼른 음식 내란 말이었을 테다. 그제서야 배달 짜장면이 출발했고, 나는 중국집 주인의 “벌써 떠났다”는 말이 우스갯소리로 3대 거짓말이라는 걸 잘 이해할 수 있었다.

 

한국의 배달 문화는 이제 짙은 그림자를 던지고 있다. 옛 소년 배달부는 여전하되, 인권의 시각으로 다시 보게 된다. 빙판길, 막히는 길을 달려 고객님의 불만을 사지 않기 위해 가슴이 타들어가는 질주가 이어진다. 신호 걸린 사거리에는 맨 앞에 오토바이 부대가 진을 친다. 퀵서비스와 음식 배달이다. 시간이 돈이고, 고객이 왕이다. 신호가 바뀌자마자 총알 같이 튀어나간다. 문제는 맞은편 차선에는 같은 ‘동료들’이 신호의 마지막을 붙들고 달려들고 있다는 점이다. 오토바이 사고는 늘 일어나고, 사고가 났다 하면 대형이다. 먹는 시장이 사실상 완전 경쟁을 넘어 출혈 경쟁을 하고 있고, 배달은 그나마 그 틈새에서 먹고사는 외식업의 바닥을 이룬다. 주문하는 이나 음식 만드는 이, 배달하는 이가 저가 외식시장에 발을 넣고 몸부림을 친다. 어쩌면 이 구도는 우리가 맞닥뜨리고 있는 최악의 생존 구조의 압축된 아수라 같은 것이다. 다 ‘쏠리고 몰려서’ 먹고사느라고 인권이나 목숨 같은 건 돌볼 여지도 없이 하루의 안녕을 빌어볼 뿐이다. 그 와중에 정작 돈 잔치는 거대 프랜차이즈 기업들과 배달을 중개한다는 신종 업종 회사들이 벌인다. 세상에! 우리가 사람이라면, 하루에 몇 명씩 죽어가고 장애인이 된다는 배달 ‘소년’들, 배달 노동자의 인권과 안전에 이토록 무심할 수 없다. 이 또한 진정한 적폐가 아닌가. 정부 당국은, 어른들은 당장 이 문제 해결에 나서라. 우리 소년들을 보호하라.

 

<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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