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영의 드라마토피아

‘아스달 연대기’와 ‘태왕사신기’의 평행이론

2019년 안방극장 최고의 대작으로 기대를 모은 tvN 드라마 <아스달 연대기>가 이달 초 방영을 시작했다. 


총 제작비 540억원으로 한국 드라마 제작비 최고 기록을 세운 이 작품은 한민족의 시원 설화인 단군신화를 재해석한 대서사 판타지다. 가상의 땅 ‘아스’를 배경으로 비범한 운명을 타고난 영웅들의 이야기가 장대한 스케일로 전개된다. 드라마 속에서 단군신화는 아스달 연맹의 창시자인 아라문 해슬라 신화로 재탄생한다. 최고 신 아이루즈의 아들 아라문 해슬라는 아스의 중심지 아스달에 홀연히 나타나 부족들 간의 전쟁을 끝내고 아스달 연맹을 세운 신화적 영웅이다. 그로부터 200년 동안 아라문 해슬라의 재림을 기다리던 아스달 연맹은 진보한 기술과 강력한 전사 타곤(장동건)의 지략을 바탕으로 아스의 경계를 넘어 영토 확장에 나선다. 그리고 아라문 해슬라의 현신으로 추정되는 은섬(송중기)이 그 피비린내 나는 정복 전쟁에 맞서 새로운 영웅담을 써내려간다. 


tvN 드라마 <아스달 연대기>와 MBC <태왕사신기>.


이쯤에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작품이 2007년 MBC에서 방영한 <태왕사신기>다. 이 작품 역시 당시에 제작비 430억원으로 신기록을 세운 대작 드라마다. 한국 드라마 사상 유례없는 규모의 대서사와 화려한 스펙터클을 선보인 글로벌급 판타지 블록버스터라는 점에서, <아스달 연대기>와 자주 비교되고 있다. 이야기의 출발점도 유사하다. 하늘신의 아들이자 단군왕검의 아버지 환웅(배용준) 신화로부터 드라마를 시작한 <태왕사신기>는 환웅의 현신인 광개토대왕 담덕(배용준)이 새로운 대제국을 세우는 이야기를 그린다. 그 과정에서 주작, 청룡, 백호, 현무 등의 사신이 환생한 영웅들의 이야기가 함께 보조를 맞춘다.


이런 유사점보다 주목해야 할 부분은 두 작품을 관통하는 논란의 양상이다. <태왕사신기>와 <아스달 연대기>는 둘 다 방영 전후로 화제성만큼이나 뜨거운 논란과 맞부딪혔다. 첫 번째 논란은 표절 의혹이다. <태왕사신기>는 김진 작가의 만화 <바람의 나라> 저작권 침해 소송에 휘말렸다. 작품의 줄거리와 사신 캐릭터의 활용 등이 흡사하다는 이유였다. 법정 공방까지 간 표절 시비에서 비록 김진 작가가 패소했으나, <태왕사신기> 제작진이 <바람의 나라> 판권 구매를 시도하다 실패한 전력이 알려지면서 논란의 불씨가 남았다. 그런가 하면 <아스달 연대기>는 미국 HBO 시리즈 <왕좌의 게임>을 비롯해 영화 <아포칼립토> <브레이브 하트> <아바타> 등 여러 작품과 유사하다는 평을 들었다. 


두 번째는 완성도 논란이다. 표절 논란과도 관련이 있다. 표절 의혹이 제기될 만큼 어디선가 본 듯한 설정이 많다는 점부터가 이미 참신함과는 거리가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대작들이 흔히 빠지는 함정이기도 하다. 화려한 스펙터클에 비해 허술한 서사, 감정 묘사나 개성 없이 기능적 역할에만 머무는 캐릭터 등이 꾸준히 지적당하는 문제점들이다. <태왕사신기>의 경우 주요 인물들이 게임 캐릭터처럼 움직이고 뒤로 갈수록 서사의 힘이 떨어진다는 비판을 받았고, <아스달 연대기>는 거대한 세계관을 대사로만 설명해 이입이 어려운 데다 CG 수준도 기대에 못 미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세 번째 논란은 스태프들의 처우 문제다. 한류 열풍이 한창이던 <태왕사신기> 방송 당시에는 배우, 스태프들의 혹사가 공론화되지 못하고 되레 미담으로 포장되는 경우가 많았다. 대신 주로 제기되는 이슈는 출연료 미지급 문제였다. <태왕사신기>는 논란에도 불구하고 40%에 가까운 시청률을 기록했으나, 단역 배우와 출연진 중에는 방영을 마친 뒤에도 오랫동안 출연료를 받지 못했다는 기사가 계속 나왔다. 제작사는 부인했지만, 주연배우 배용준의 출연료가 50억원에 이른다는 기사까지 쏟아져서 더 씁쓸한 소식이었다. <아스달 연대기>는 151시간 무휴 촬영이라는 기록적 노동 착취로 문제가 됐다. ‘68시간 자체 제작가이드’를 준수했다고 해명한 제작사조차도 해외촬영 부분만큼은 혹사를 인정했다. 


12년이라는 시차에도 불구하고 놀라울 만큼 유사한 <태왕사신기>와 <아스달 연대기>의 평행이론은 근본적으로 그때나 지금이나 전혀 개선되지 않은 열악한 제작 환경에 그 원인이 있다. 최근의 대작 드라마는 소위 ‘텐트폴 드라마’로 불린다. 본래 할리우드 메이저 영화사가 성수기를 겨냥해 제작한 블록버스터를 뜻하던 이 용어는 국내 드라마에도 대작 바람이 불면서 점점 널리 쓰이고 있다. 텐트폴 드라마의 목표는 수익의 극대화다. 따라서 과감한 도전이나 참신한 실험보다는 안전한 흥행 공식을 조합한 기획, 스타 캐스팅에 의존하기 쉽다. 이 과정에서 흥행을 위해 전면에 내세우는 특정 스타들의 몸값은 상승하고, 스태프들의 노동은 예산 절감 대상이 된다. 단기간에 제작을 마치기 위해, 밤샘 촬영 이후 짧은 휴식을 취한 뒤 바로 촬영을 재개하는 ‘디졸브 노동’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길 정도다.


과거 <태왕사신기>를 둘러싸고 벌어진 여러 논란은 결국 높은 시청률 뒤에 가려졌다. <아스달 연대기> 또한 흥행에 성공한다면 재평가받을지 모를 일이다. 물론 두 작품이 전에 없던 시도를 통해 한국형 판타지 블록버스터의 새 지평을 연 점은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이제는 대작에 걸맞은 완성도와 제작 환경을 더 중요하게 생각할 때다.


<김선영 TV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