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굴맛 굴값

외국 요리사들이 한국에 와서 놀라는 이유 중 하나는 굴 때문이다. 첫째는 환상적인 맛 때문이고 둘째는 그 값이다. A라는 이탈리아 요리사와 슈퍼마켓에 간 적이 있다. 굴 한 봉지에 2000원이라는 가격표를 보고 그가 물었다. “굴 한 개 가격인가, 한 봉지 가격인가?” 한 봉지(200g)라고 확인해주자 그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서양에서는 굴 한 개 값이다. 그렇다. 딱 한 개 값. 그와 노량진수산시장에도 들렀다. 껍데기 한쪽을 까서 파는 소위 ‘석화’ 40개를 1만원에 판다고 하자, 더 놀랐다. 유럽에서는 굴값은 차치하고, 40개쯤 까는 임금만 1만원이라는 것이다. 맛을 보고는 입을 떡 벌렸다. 유럽의 유명한 굴보다 맛이 더 낫다는 것이다.

그의 말은 예의상 하는 칭찬이랄 수 있다. 그러나 외국에서 굴을 다루거나 먹어본 많은 사람들은 우리 굴에 엄지를 세워 보인다. 나도 솔직히 말해서 스코틀랜드 굴, 지야르도 굴, 히로시마 굴 같은 유명 산지 굴에 비해 우리 굴맛이 떨어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애국심 따위는 빼고서 말이다. 지난여름 프랑스 파리에 들렀다. 시내에서 굴을 한 접시 시켰다. 개당 5유로(약 8000원) 정도 했다. 그렇다. 딱 한 개에 말이다. 그렇다고 맛이 대수롭지도 않았다. 그 자리에 우리 굴을 가져다 놓아도 아무도 알아채지 못할 맛이었다. 일본도 우리 굴과 흡사한 수준인데, 시장에서 사먹는 소박한 굴이 한 개에 100~200엔이다. 우리 돈 1000~2000원이라는 얘기다. 외국인의 굴 사랑은 대단하다. 날해물을 거의 먹지 않는데, 굴만큼은 날것으로 먹는다. 그것도 아주 좋아한다. 중동 아부다비 공항에는 굴만 파는 바가 있다. 온갖 인종의 부자들이 앉아 비싼 굴을 먹는다. 사막 한가운데 세워진 보세구역에서 신선한 굴을 먹는 사람들의 광경은 기이했지만, 굴은 이미 부유함과 미식의 상징이 된 셈이다.


지난 10월16일 통영에서 초매식이 열렸다. 첫 번째 경매의식이다. 햇굴을 처음 판다는 공식 행사다. 이곳에 가면 이른바 ‘박신장’이라는 것이 있다. 아주머니들이 모여 굴을 까는 곳이다. 깐 굴의 무게로 임금을 받기 때문에 말 한마디 아껴가며 굴을 깐다. 그들의 고단한 노동으로 우리가 별 수고 없이 깐 굴을 마음껏 싸게 먹을 수 있다. 배후에 이런 좋은 ‘굴밭’을 끼고 있지만 굴 요리는 무척 단순하다. 생굴에 굴무침과 석화 정도가 고작이다. 굴은 구워 먹어도 아주 맛있다. 집에 오븐이 있다면 버터를 살짝 발라 5분쯤 굽는 것으로 요리가 끝난다. 올리브오일에 마늘과 파를 넣고 파스타를 해도 기막히다(필자가 처음 개발한 요리인데 이제는 시중 어디에서든 판다. 한 그릇에 2만원쯤 한다). 무엇보다 날굴처럼 맛있는 건 없을 것이다. 초고추장이나 식초간장에 찍어 먹는 굴맛이란! 한겨울을 기다리지 말고 굴을 드실 계절이다. 통영에서는 굴을 ‘꿀’이라고 부른다. 특유의 사투리겠지만, 나름 의미심장한 발음이다.


박찬일 |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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