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와 세상

귀신 소동

 

녹음실에서 귀신을 보면 ‘대박’이 난다? 100만장이 넘게 팔리는 골든디스크가 심심치 않게 나오던 1990년대 가요계에 그런 속설이 있었다. 대개 음반 녹음은 시간에 쫓겨 밤새우기 일쑤인데 스태프 중 누군가가 피곤함에 지쳐 ‘헛것’을 보는 것이다. 대박을 기대하는 심리 때문이었는지 당시엔 귀신 얘기가 흔했다.

떠들썩했던 사건 중 하나가 이승환의 ‘뮤직비디오 귀신’이었다. 1997년 이승환의 5집 ‘애원’(사진)의 뮤직비디오는 장혁과 김현주가 출연, 드라마 형식으로 제작됐다. 완성된 뮤직비디오에서 지하철을 운전하는 기관사 옆에 흰옷을 입은 긴 머리 여성이 탑승한 장면이 포착됐다. 일부 연예매체가 그 장면까지 캡처하여 지하철에서 투신자살한 처녀 귀신설을 제기했다. 노이즈 마케팅이 아니냐는 공세에 시달리던 이승환은 기자회견을 하기도 했다. 기관사 역시 묵묵부답이었다. 훗날 퇴직한 기관사가 지인을 태운 거였다고 고백했다. 징계가 두려워 침묵한 것이다.

1994년 서태지와 아이들의 3집 수록곡 ‘교실 이데아’를 놓고 뜬소문이 나돌았다. 노래를 거꾸로 들으면 ‘피가 모자라’라는 악마의 목소리가 들린다는 소문이었다. 연예 정보 프로그램이 외국의 사례까지 들먹이면서 서태지의 의도된 연출설을 제기했다. 그로 인해 서태지는 한동안 사탄 숭배자로 몰리기도 했다.

장윤정은 데뷔곡이자 출세작인 ‘어머나’를 녹음할 때 귀신 소리를 들었다고 고백했다. 녹음 도중에 헤드폰으로 발소리가 들려서 다른 사람들과 들으려고 했지만 녹음 장비가 꺼졌다는 것이다.

여하튼 여름마다 가수들의 녹음실에는 귀신들이 흔했다. 실제로 음반이 크게 히트하기를 바라는 제작자나 가수가 괴담을 유포하기도 했다. 올여름엔 어떤 귀신이 우리를 섬뜩하게 할 것인지 은근히 기다려진다.

 

오광수 시인·대중음악평론가

'노래와 세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머 타임  (0) 2022.07.25
엘비스 프레슬리  (0) 2022.07.18
삐삐밴드의 추억  (0) 2022.07.04
소방차  (0) 2022.06.27
송골매  (0) 2022.06.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