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연의 미술소환

[김지연의 미술소환]눈 없이 보는 세계

양아치, 갤럭시 익스프레스, 2020, 단채널 영상, 10분56초, 가변크기

“우리가 만약 10개의 눈으로 피사체를 볼 수 있다면, 그 경험은 무엇일까.” 작가 양아치는 렌즈 없이 수치화된 데이터만으로도 3D 이미지를 만들어낼 수 있는 장치 ‘라이다’로부터, 우리의 시각을 오래도록 지배해온 원근법적 시각체계를 깨뜨릴 수 있는 시점이 왔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작가에게 이것은 ‘원근법’으로 상징할 수 있는 서구 근대적 가치관이 구축한 시스템을 폐기하고 다른 관점을 모색할 수 있는 기회로 다가왔다.

 

주변 사물을 인식하기 위해 라이다는 펄스 레이저 신호를 쏜다. 신호가 주변 사물과 부딪힌 후 되돌아오기를 초당 수백만번 반복하면서 축적한 데이터값은 주변 환경에 대한 정확한 실시간 3D지도로 생성된다. 사물의 위치, 운동 방향, 속도도 확인할 수 있다. 데이터로 보는 세계라면, 두 개의 렌즈에 갇혀 있던 인간의 시야각은 무한히 확장될 것이며, 오목하거나 볼록한 렌즈가 필연적으로 가져오는 왜곡 현상도 사라진다. 이제, 긴 세월 나와 대상을 가르는 중요한 권력의 자리에 앉아 있던 ‘시선’은 다른 맥락으로 내려와야 한다.

 

머지않은 미래에 세상의 모든 사물은 상호 연결돼 작동한다. 30년 후 인류는 약 12조개의 사물과 연결된 삶을 살아간다고 한다. 그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지금의 우리와 다른 인지와 지각을 가질 것이다. 작가는 인간의 눈과는 다른 ‘새로운 눈’이라고 할 수 있는 라이다와 열화상카메라를 사용한 작품 ‘갤럭시 익스프레스’를 통해, 우리가 다중의 눈과 기관들로 동시에 여러 차원을 볼 수 있다면, 인식의 한계를 넘어선 어떤 세계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암시한다.

 

그 세계의 실체를 지금의 우리는 알 수 없다. 작가가 ‘미리 현재에 도착한 사물들’이라고 명명한 사물들이 암시하는 감각으로부터, 우리가 아는 시각체계를 넘어선 그곳의 존재를 예측할 뿐이다. 연결된 세상이 추출하는 거대한 데이터에는 선악이 없지만, 그것을 누가 소유하느냐는 또 다른 감시와 통제 시스템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된다. 이제는 인간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제대로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김지연 전시기획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