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내 인생에서 후회되는 한가지

[내 인생에서 후회되는 한 가지](68) 최정임 - 일 중독 딸

최정임 | 정동극장 극장장

 


무용가에서 경영자로 이름을 바꿔 달려온 시간이 벌써 3년째로 접어들었다. 낯선 영역에 발을 들이고 그 책임과 의무를 다하기 위해 극장의 중장기 발전 3개년 계획을 수립하고 이를 바탕으로 경영지표를 달성하기 위해 숨 가쁘게 달려왔다.

 

올해 들어 쉰 날을 꼽아보니, 열 손가락도 못 채웠다. 살인적인 스케줄을 견뎌 준 체력이 고마울 따름이다. 그렇지만 이제는 누적된 피로가 나의 발목을 잡기 시작했다. 재검을 종용하는 건강센터의 전화, 떨어지는 집중력, 위험수위를 알리는 건강상태 등. 주말의 숙면 뒤에 막연한 불안감과 죄책감마저 밀려드는 일중독은 어쩔 수 없는 나의 직업병인 듯하다. 지난 시절을 가만히 되짚어보면 국립무용단에서 활동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1977년부터 시작된 나의 춤 여정은 치열하고 화려했다. 우리가 해외공연을 나가던 1970년대에는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알지도 못했고, 더군다나 문화예술에 대해서는 무지한 상태였다. 그래서 국립무용단은 세계에 한국과 한국문화를 알리는 명실공히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사절단이었다. 한번 해외공연을 나가면 3개월씩 순회공연을 했고, 관용여권이 발급되었고, 방송사의 9시 뉴스에 우리의 출입국이 소개될 정도였다. 또 외국 공항엔 늘 대사관 직원들이 마중을 나왔고 공연이 끝나면 대사관에서 공식 만찬이 이루어졌다. 3년 주기로 미주, 유럽, 중남미 등을 순회공연하며 각국의 대통령과 수상 등을 만났다. 현지 교포와 파견 근로자들을 위문하는 문화외교관으로서 기립박수와 수많은 찬사를 받으면서 화려한 무용가로서 삶의 여정을 보냈다.

 

최정임 정동극장 극장장

 

이런 화려한 생활 이면에는 추억이 없는 사생활, 여유와 쉬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생활습관, 비가 내릴지 기온변화가 있을지 일기예보가 가능한 근육통과 관절염, 가족 간의 대소사를 함께하지 못한 내가 있었다.

 

일, 일, 일… 일중독이라는 것도 모른 채 보낸 시간이었다. 난 최선을 다해 열정적으로 일하며 놓치고 잃어버린 것들에 대해 후회는 없다고 늘 말해왔었다. 그러나 나의 깊은 내면의 저편에는 어머니에 대한 후회와 죄책감이 자리하고 있다.

 

어머니, 나의 엄마, 그분은 나의 정신적 지주셨다. 어머니의 병수발을 맡았다는 미명 아래, 또 집안의 가장이라는 역할을 들어 나는 나의 고통만을 끌어안고서 병석에 누워 계신 어머니의 외롭고, 두렵고, 고통스러웠을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었다. 의식불명 상태의 어머니를 두고, 도망치듯 3개월의 해외공연을 떠났다. 귀국 전날 꿈속에서 뇌출혈로 인해 마비되었던 다리를 절지 않고 찾아온 어머니는 나에게 하직을 고했다. 죽을 것 같은 공포에 휩싸여 귀국을 했다. 어머니는 중환자실에서 딸에게 한을 남기게 될까봐 마지막 힘을 다해 기다리고 계셨다. 두 달 이상 감겨있던 눈을 뜬 어머니는 서럽게 우는 막내딸을 슬며시 바라보신 후 이내 눈을 감으셨다. 끝내 사랑한다는 말을 할 겨를도 없이 그렇게 떠나셨다. 날씨가 궂은 날 근육통이 엄습해 오면 누워계신 어머니의 다리 한번 주물러드리지 못했던 기억에 늦은 용서를 빈다.

 

시간과 부모님은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나는 절감하고 있다. 지금은 용기를 내어 가족, 친구, 후배, 제자들에게 사랑한다고 말한다. 어떠한 좋은 감정도 가슴에 쌓아두기만 한다면 소용없다는 걸 어머니가 가르쳐주셨기에 어색하지만 용기를 낸다. 나는 하늘에 계신 어머니께 다짐해본다. “앞으로는 후회하는 일을 만들지 않고, 추억이 많은 사람이 되기 위해, 또 행복하게 일하는 딸이 되기 위해 나의 목표를 수정해 나가고 있습니다. 어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