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내 인생에서 후회되는 한가지

[내 인생에서 후회되는 한 가지](69) 김홍신 - 내가 숨 쉬는 한 그대는 ‘사사’

김홍신 | 소설가·건국대 석좌교수

 

 


가장 아름다운 인간의 향기는 후회인지 모른다. 부끄러운 자신의 삶을 진솔하게 고백하는 것은 영혼의 눈물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내게 다가오는 후회는 태풍이 휩쓸고 간 폐허 같아서 드러내기 싫었다.

 

사람이 스스로 움직이는 동력을 잃으면 낙엽이 된다. 아내가 그랬다. 오랜 세월 병상에서 현대의학의 도움으로 겨우 숨을 쉬었다. 어려서 얻은 천식이 기관지 확장으로 이어지며 평생 병치레를 했고 체중은 39kg을 넘어 본 적이 없으며 마지막 2년 동안은 남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움직이지 못하는 낙엽 같았다.

 

에어컨 실외기만큼 큰 산소발생기, 코에 줄을 연결하는 실내기에 의지해 숨을 쉬고 병원에 갈 때는 이동용 산소통을 들고 돕는 이가 따라가야만 했다.

 

아내가 죽음의 문턱에 서 있는 그 지경에 나는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다. 내가 주동이 되어 한나라당의 개혁을 위해 ‘국민속으로’를 결성하여 이우재, 이부영, 김부겸, 김영춘, 안영근 의원이 탈당했고 나도 약속대로 2003년 정기국회 마지막 날인 12월10일 탈당과 동시에 국회의원직을 사퇴했다.

 

김홍신 전 국회의원 ㅣ 출처:경향DB

 

아내의 병상을 지키던 나는 당시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과 김한길 위원장의 간곡한 청으로 정치1번지라는 종로에 공천을 받았다. 투표일 40일 전에 아무 연고도 없는 종로에 출사표를 던진 것이다.

 

중환자실로 들어가 미동도 하지 않는 아내에게 물었다. “종로에 출마를 하라는데 할까?” 아내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두어 번 더 묻자 아내가 한참 만에 살포시 눈을 떴다가 감았다. 아내는 두어 달 넘게 눈을 떠 본 적이 없었던지라 기적과도 같았다. 나는 출마해도 좋다는 뜻으로 해석해 버렸다. 제15대 민주당 대변인으로 비례대표 4번을 받아 국회의원이 될 때, 아내가 분명 반대를 했었음에도 나는 아내의 찰나의 눈빛을 찬성으로 단정해버렸다.

 

신경과 근육마비 상태라도 의식이 있어 소리는 들을 수 있었을 텐데, 아내가 말을 할 수 있었으면 도대체 뭐라고 했을까. 죽어가는 사람 놔두고 무슨 놈의 출마냐고 했으면 포기를 했을까. 선거 40일을 남겨두고 공천을 받아 종로에 갔지만 며칠을 허송세월했다. 정동영 의장이 출마하지 않는 한 민주적 절차를 통해 공천을 결정하자는 출마예정자들의 반발은 거세었다. 그들은 결국 가장 열성적으로 내 선거를 도왔다.

 

아내 없는 선거운동은 힘겨웠다. 아내의 자리를 대신한 건 휴학한 딸이었고 복무 중인 아들은 먼 걸음으로 지켜봐야만 했다. 그리고 선거기간 중에 아내는 단 한마디의 말도 못한 채 마흔 아홉 해밖에 살지 못하고 세상을 등졌다.

 

딸아이가 싸늘한 엄마 품에 엎드려 “엄마, 이 다음에는 절대 아프지 마”라며 짙게 울었다. 나는 딸아이의 이 한마디만 떠올리면 지금도 눈물이 솟는다.

 

삼우제를 지낼 때까지 나는 종로에 단 한발자국도 딛지 않았다. 출마를 포기할 작정이었다. 아이들이 말리고 주변에서 말리자 나는 마지못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결국 나는 500여표 차이로 낙선했다. 각종 여론조사와 출구조사에서도 당선 가능성이 높았지만 하늘은 나를 쓸 데가 따로 있는 듯 했다. 가장 안타까운 후보, 꼭 당선되어야 할 후보로 선정되는 영광도 동시에 누렸다. 낙선이 확정되었을 때 수고한 모든 사람들에게 “잘 놀다 간다”는 인사를 하고 애써 웃으며 집으로 왔다.

 

마당에는 이름 모를 가녀린 풀꽃들이 피어있었다. 아내는 풀꽃은 물론 잡초마저 뽑지 못하게 했다. 실낱같은 자신의 생명줄을 알기에 그러했으리라.

 

아프리카 스와힐리족은 사람이 죽어도 누군가 기억하는 한 ‘사사(sasa)’라 하고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으면 비로소 진짜 죽었다는 뜻에서 ‘자마니(zamani)’라고 한다. 세상의 모든 것은 사라지는 게 아니라 변해버리는 거라고 했다.

 

너무 오래 병상에서 낙엽처럼 살다가 낙엽처럼 떠난 그녀에게 가슴속 오래 삭힌 말을 해야겠다.

 

“내가 살아있는 한 그대는 사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