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칼럼

[노래와 세상]봄은 동백꽃 그늘 아래로 온다

이 땅의 봄은 오륙도를 지나 동백섬을 거쳐서 온다. 조용필이 그렇게 정의했다. 누군가는 ‘여수 밤바다’를 통해서 온다고도 하고, “하얀 새옷 입고, 분홍신 갈아 신고” 온다고도 했지만 그 또한 정설이 아니다.

 

“꽃피는 동백섬에 봄이 왔건만/ 형제 떠난 부산항에 갈매기만 슬피 우네/ 오륙도 돌아가는 연락선마다/ 목메어 불러봐도 대답 없는 내 형제여/ 돌아와요 부산항에 그리운 내 형제여.”

 

조용필에게 ‘돌아와요 부산항에’는 천국과 지옥을 동시에 맛보게 했다. 원래 이 노래는 1972년 발표된 조용필의 독집음반에 수록됐다. 그러나 무명가수의 앨범으로 끝이 났다. 그러다가 1976년 발표된 앨범에 구색을 맞추기 위해 끼워 넣었다. 당시 제작자가 재일동포 고향방문에 맞춰 노랫말을 바꿔서 넣자고 했다. 부산의 다운타운가에서부터 반응이 왔다. 그해 가을, 치솟는 인기 덕분에 앨범 표지를 바꿔 재발매했다. 로커를 꿈꾸던 조용필은 엉뚱하게도 트로트로 스타가 된 것이다.

 

오랜 무명생활을 탈출한 조용필에게 위기가 닥쳤다. 그가 유명해지자 무명밴드로 활동하던 미8군 클럽 시절에 손댔던 대마초가 문제가 된 것이다. 조용필은 남산의 중앙정보부에 연행되어 모진 매질을 당한 뒤 활동이 금지됐다.

 

홑동백, 백동백 등 그 종류만큼이나 동백은 다소 처연한 노래에 자주 등장한다. “눈물처럼 동백꽃 지는 그곳”(선운사, 송창식)에서는 “대숲에 베인 칼바람에 붉은 꽃송이들이 뚝뚝”(선운사 동백꽃이 하 좋다길래, 정태춘) 떨어진다. 소설가 이제하는 “또 한 번 동백이 필 때까지 나를 잊지 말아요”(모란동백, 조영남)라고 노래했다. 시인 문정희는 ‘동백꽃’에서 “가장 눈부신 순간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동백을 “가혹한 확신주의자”라고 정의했다. 아무래도 그를 만나야겠다.

 

오광수 시인·대중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