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비가 내리네/ 추억을 말해주듯이/ 이렇게 비가 내리면/ 그날이 생각이 나네/ 옷깃을 세워주면서/ 우산을 받쳐준 사람/ 오늘도 잊지 못하고/ 빗속을 혼자서 가네.”
채은옥의 허스키한 목소리가 인상적인 ‘빗물’(1976년)은 겨울비에 어울리는 노래다. 낙엽 위로 빗물이 떨어지면 어디선가 이 노래가 들려올 것 같다. 약관의 나이에 이 노래를 발표했을 때 채은옥이 출연하는 명동의 라이브클럽 ‘쉘브르’는 팬들로 차고 넘쳤다. 가냘픈 몸매에도 불구하고 비음에 두성을 보탠 매력적인 목소리로 단숨에 스타덤에 올랐다. 당시에는 재벌2세들이 공연장 밖에 차를 대고 기다리는 해프닝도 있었다.
전남 보성 출신의 채은옥을 발탁한 건 유명 라디오 DJ이자 ‘쉘브르’의 운영에 관여했던 이종환이었다. 목소리가 특이하고 괜찮다면서 레코드사를 운영하는 처남에게 소개해줬다. 채은옥이 이 노래를 작사·작곡한 김중순을 만난 건 행운이었다. 작가 출신으로 음악적 재능이 뛰어났던 그는 문성재의 ‘부산 갈매기’, 김수희의 ‘잃어버린 정’ 등을 만든 히트곡 제조기였다.
그러나 그의 인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이듬해 대마초사건에 연루되어 10년 동안 가수활동을 접었다. 대법원 판결까지 가서 무죄를 증명했지만 한 번 찍힌 낙인은 회복하기 어려웠다. 결혼과 이혼을 거치며 녹록지 않은 세월을 산 그는 신앙을 갖게 되면서 CCM 음반을 내기도 했다.
2016년 전영록, 유익종, 김목경 등의 지원을 받으면서 데뷔 40주년 기념콘서트를 열기도 했던 그는 지금도 여전히 노래활동을 하고 있다. ‘빗물’ 또한 생명력이 길어서 후배가수 조관우, 정동하 등이 리메이크했다. 또 심은경이 주연한 영화 <수상한 그녀>에도 등장하는 등 젊은층에게도 인기가 높다.
오광수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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