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노포를 부술 것인가

최근에 한국방문위원회 사업에 참여했다. 한국을 찾은 외국인을 대상으로 서울의 노포를 탐방해보는 프로그램이었다. 여러 국적이 망라된 참가자들은 상기된 표정이었다. 언어별로 통역이 제공됐다. 여담이지만, 중국어 팀은 중국, 대만, 홍콩 사람들이 묶였다. 참가자들은 서울에 노포가 있다는 사실에 깊은 흥미를 가졌다. 그들이 인터넷이나 책을 통해 얻는 음식점 정보라는 건 역사성까지 담은 경우가 드물기 때문일 것이다. 루트는 피맛골의 청진옥에서 시작해서 열차집, 을지로 3가의 조선옥으로 이어졌다. 평균 업력 80~90년에 달하는, 서울의 식당 역사를 보여주는 집들이다.

 

 

청진옥에서 서울의 노동 음식과 심야 생활의 역사를 접할 수 있었다. 조선시대 한양 도성에 나무와 물건을 배달하던 노동자들의 음식으로 시작되었을 해장국, 24시간 사람들이 움직이던 1990년대의 등장, 그리고 아직도 하루 종일 불을 끄지 않는 가마솥의 전설에 그들은 놀라워했다. 열차집은 전후 서울의 빈약했던 경제사정을 상징하는 음식인 빈대떡 전문이다. 한 장의 빈대떡에 막걸리나 막소주를 마시던 전후의 가난했던 뒷골목 문화, 나아가 1970년대에서 1990년대로 이어지면서 피맛골의 주역이 된 ‘회사 인간’의 등장을 설명하면서 나는 작은 전율을 느꼈다. 서울의 현대사를 빈대떡 한 접시에 투영해서 바라볼 수 있다는 건, 또 얼마나 신기한 일인가 하고 말이다. 조선옥이 있는 을지로 3가에 이르러서 서울의 발전을 이끌었던 공구상가 등 작은 산업용품 가게들의 역사를 설명하면서는, 우리가 쉽게 포기해버렸던 도시 역사가 얼마나 귀중한지 참가자들에게 충분히 말할 수 없었다. 그것은 현재도 진행형이며, 도시민의 삶의 패총이 순간에 허물어지고 빌딩이 솟을 수 있다는 걸 어떻게 외국인인 그들에게 다 말할 수 있었겠는가. 조선옥의 육개장과 갈비 맛은 좋았다. 참가자들과 나누는 서울의 맛은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그렇게 프로그램은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내 스스로 의문이 남았다. 도시는 영원히 존속할 수 없다. 재생하고 변화한다. 당연한 일이다. 노포들도 없어질 수 있다. 그러나 왜, 어떻게라는 의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서울은, 도시는 허가권을 가진 관청이 주인이 아니다. 관청의 담당자는 바뀌지만, 시민은 대를 이어 살아갈 곳이기 때문이다.

 

을지로 3가 권역의 재개발이 논란이 되고 있다. 개발 이익에서 배제된 세입자들은 이미 시위를 시작한 지 오래다. 허름해서 역사성을 더 온전히 가지고 있는 노포의 해체도 많은 시민들의 반발을 샀다. 누군가 말했다던 “새로 지은 깨끗한 빌딩에 들어가서 장사하면 더 좋지 않은가”라는 몰역사적인 발언도 회자됐다. 청진옥이 피맛골을 부수고 들어선 그 멋없는 새 건물에 옹색하게 세들어 있던 장면을 좋다고 한 서울시민은 없다. 우리는 묻는다. 서울은 누구의 것인가. 도시는 낡으면 부수고 새로 지어야만 하는 경직된 존재인가, 아니면 그 콘크리트가 숨을 쉬고 있다고 볼 것인가. 영원한 도시는 없다. 그러나 사라지는 존재들에게 합당한 이유가 부여되어야 한다. 그게 우리가 생각하는 역사다.

 

<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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