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노량진 쇼핑

노량진은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자주 간다. 하나는 수산시장이다. 다른 하나는 길 건너 고시촌에 볼일이 있어서다. 머리도 깎고 밥도 먹으러 간다. 서울 시내에서 이렇게 괜찮은 품질에 최저가의 서비스를 파는 동네는 없다. 한때 재수생이 많았던 이곳은 이제 ‘종합 공무원 공채시험 준비 타운’이 되었다. 속칭 ‘고시’다. 왕년의 고등고시부터 사법고시, 행정고시 등을 이르던 말인 고시가 이제는 공직에 입직하는 모든 시험을 이르는 말이 되었다. 노량진 고시촌은 불안한 젊음의 현주소로 종종 시사프로그램에서도 다루고 있다. 고용시장은 엉망이고,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세상에 그나마 ‘공직’은 안정된 생활을 바라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대안이 되었기 때문이다. 사회적 참화라고 할 비정규직, 계약직의 차별이 가져다준 결과이기도 하다.

 

 

노량진도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한때 많았던 복사집은 많이 줄었다. 디지털 시대 때문인 듯하다. 흥미로운 건 헬스클럽 내지는 운동교습소가 늘었다는 점이다. 경찰직, 소방직 등 신체의 능력을 따지는 공직을 준비하는 수험생을 위한 영업장인 셈이다. 한 골목에서는 도배장판 가게가 있었다. 새로 도배라도 하고 셋방과 원룸을 쓰려는 사람들의 수요다. 밥집의 구성도 많이 바뀌었다. 커피 전문점이 크게 늘었고, 특별한 건 디저트가 아주 많다는 거다. 카페인과 단것이야말로 스트레스가 극에 치닫는 이들에게 유일한 위안일지도 모르겠다. 한때 노량진의 핵심 식량 공급처로 유명했던 전설적인 식권 밥집은 많이 줄었다. 수험생들의 세대가 바뀌고 그들의 식성도 달라지고 있는 탓일 게다. 스파게티와 피자집, 일본식 덮밥집이 그 자리를 하나둘 차지하고 있다. 여전히 짜장면은 최고 인기지만.

 

제일 반가운 건 싼 물가다. 이곳은 하나의 거대한 자급, 생활 구역이라 없는 게 없다. 고시생도 먹고 즐기고 소비하는 집단인 까닭이다. 도대체 저 값에 어떻게 저 수준의 물건과 서비스를 제공하는지 의심이 들 정도다. 노량진은 대개 장기 체류하는 소비자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나름 단골장사다. 서비스의 질이 좋을 수밖에 없다. 가격은 상상 이상이다. 남자 커트가 5000원, 여자는 8000원이다. 삼겹살이 비록 수입 냉동이지만 일인분 3000~4000원에 나오고 아귀찜도 2만원대가 팔린다. 6000원짜리 치킨에 5000원인 갈비찜 정식, 1만원대 회접시도 있다. 1000원짜리 테이크아웃 아메리카노가 불티나게 팔린다. 거리를 걷다가 5000원짜리 커트를 하고 역시 5000원인 백반을 먹었다. 밥은 무한 리필! 어떤 대형 식당에서는 식사 후 라면을 공짜로 끓여먹을 수 있다. 아메리카노도 한 잔 했다. 치열한 경쟁을 치러야 하는 이 동네 수험생들의 표정은 생각보다 밝았다. 젊음이란 그런 것이다. 별로 기쁠 일이 없을 것 같은 상황에서도 그들은 웃고 떠들었다. 노량진을 상징하는 쓸쓸하고 슬픈 컵밥은 여전히 팔리고 있었지만. 혹시라도 시간이 되시거든 이 동네에서 밥 한 그릇, 술 한 잔 하시기 바란다. 옆자리 청춘들의 이야기도 슬쩍 얻어들어보기 바란다. 노량진은 젊은 생물이다. 오늘도 꿈틀거린다.

 

<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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