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벨기에 한식당 ‘먹자’

애진 허이스(41)라는 친구가 있다. 그이의 국적은 벨기에. 입양자 출신이다. 애진이라는 이름은 한국에서 벨기에로 떠날 때 가지고 있던 이름이다. 지인의 소개로 한국에서 그이를 만났었다. 벨기에 제3의 도시 겐트에서 ‘먹자’라는 팝업식당을 한다고 했다. 팝업이란 비정기적으로 임시 운영하는 형태를 말한다. 그 먹자는 한식을 파는 팝업인데 겐트에서 아주 유명하다. 애진이 언젠가 사진을 보여줬다. 놀랍게도 한국의 삼겹살집을 그대로 옮겨 놓은 이미지다. 드럼통과 불판에 현지인들은 베이컨으로나 먹는 삼겹살을 구워서 쌈장에 찍고 상추를 싸서 먹는다. 뭐 하나 해준 것 없는 조국이 뭐 좋다고, 애진은 이 나라에 종종 온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에서 어릴 때 기억을 되살리려 한다. 무엇보다 음식의 기억이 혀에 붙어 있다고 했다. 먹어보면 마음 창고의 저 깊은 바닥에서 울림이 일어난다. 김치, 된장, 고추장, 우리가 ‘반찬’이라고 부르는 모든 음식들. 아닌 게 아니라 반찬은 그냥 추상적인 명사이지만 외국에서는 한식의 독특한 음식 형태를 이르는 특정한 명사가 되었다. 우리가 한식의 반찬을 재활용이나 하고 마지못해 만들어서 괜히 상차림만 느는 불편한 존재로 여기고 있을 때, 외국에선 오히려 놀라운 미각의 대상으로 보아주었다. 일례로, 한식의 반찬은 다양해서 더 흥미롭다고 한다. 밥에 반찬을 다양하게 섞어 먹으면서 각자 창의적인 맛을 즐기는 게 한식의 특징이라는 것이다. 어쨌든 그 애진이 이번에 다시 한국에 왔다. 내게 SOS를 쳤다.

 

 

“책을 내기로 했어. 벨기에의 출판사에서 한식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였어. 이번에는 그 취재와 촬영을 해야 해.”

 

애진의 한국 지인들이 기꺼이 그이의 매니저가 되기로 했다. 김치는 어디서 찍고, 사찰음식은 어디서 만들고, 젓갈은 어디 가야 제대로 보고, 국밥은 어디서 먹고, 반찬은 음 또 거기서 만들자. 애진이, 자신의 조국을 떠나게 된 저 슬픈 사연은 거론치 않더라도, 우리는 일정 정도의 부채감이 있다. 누가 아니랴. 우리가 껴안을 수 없었던 이들에게 우리가 빚을 지지 않았다고 할 수 있을까.

 

애진은 조건을 달았다. 평범한 엄마들의 손맛을 배우고 찍고 싶다고 했다. 서민들이 먹는 밥과 반찬을 알고 싶다고 했다. 그게 진짜 한식 아닌가 하고. 문득 어이없었던 지난 일들이 떠올랐다. 지난 여러 정부에서 한식과 관련해서 유럽에 뿌린 돈은 적지 않았다. 현지 기자와 정부 인사들을 모아 성대한 공짜 파티도 여러 번 열었다. 그렇지만 유럽인들은 한식이 뭔지 여전히 모른다. 거액을 들여 유럽에 있는 한식당을 취재한 책을 엄청나게 찍어서 뿌려도 들춰봤다는 얘기를 못 들었다. 한국인이 평소에 먹는 그런 음식을 유럽에 본격적으로 소개하는 일은 어쩌면 애진 허이스라는 ‘벨기에인’에 의해 이뤄질 것 같다. 그이는 몇 달간 한국에 머물며 우리들이 가는 밥집과 시장을 취재할 것이다. 혹시 마주치면 환하게 웃어주기를. 그리하여 조국이 그래도 살 만한 곳이라는 걸 보여줄 수 있기를. 애진의 눈으로 보는 한식은 어떤 것일지 궁금하기만 하다. 그이에게 말했다“한식, 이거 썩 괜찮지 않아?”

 

<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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