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아프리카 돼지열병

돼지고깃집을 하는 친구가 있다. 연초에 들렀더니 표정이 어둡다. 돼지고기가 너무 싸서 그렇단다. 싸게 팔면 남는 게 적으니 그럴 수 있겠구나 하고 위로했다. 그게 아니란다. 들여오는 돼지고기가 너무 싸다는 것이다. 연초면 국내 돼지고기 가격이 바닥을 칠 때였다. 생산비 이하 가격에 팔렸다. 축산가는 비명을 질렀다. 


“싸다고 좋은 게 아니야. 너무 싸면 폭등할 수 있어. 당장 모돈 도태시켜서 생산가를 맞추라고 당국은 요구할 거고, 그러다가 다시 오르기 시작하면 대책이 없어. 고깃집도 피해를 볼 거야.”



올 초에 이어진 돼지고기 가격 폭락은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한다. 하나는 소비 부진이다. 경기가 안 좋아서 고깃집 장사가 잘 안된다는 뜻이다. 고기가 잘 안 팔리고 싸면 축산가에서는 재고 부담을 안는다. 돼지는 생물이라 이미 기르고 있는 놈들을 마냥 떠안고 있을 수 없다. 단순 재고가 아니라 먹여 살려야 한다. 표준체중보다 더 나가고, 오래 기르면 맛은 대개 좋아진다. 조직도 더 치밀해지고 깊은 맛도 난다. 그러나 시장에서 그런 고기의 수요가 별도로 존재하지 않는다. 도축도 어렵다. 표준체중이 아니면 도축 라인에 걸기 위해서는 준비가 필요하다. 그러니 적정 체중에 도달하면 내다 팔아야 한다. 사료비도 못 건지는 꼴이다. 수입 돼지고기가 큰 영향을 끼쳤다. 특히 미·중 무역분쟁 때문에 다량의 미국산 돼지고기가 한국으로 들어왔다고 한다. 특히 목살, 삼겹살 등 한국인이 고가로 치는 부위를 수입하기 때문에 타격이 더 컸다. 사실상 한국 돼지 축산은 두 부위의 생산을 목표로 한다. 등심, 안심 부위에 비해 몇 배 비싼 까닭이다. 


최근 돼지고기 값이 조금씩 움직일 조짐을 보이고 있다. 연초보다 올랐다. 워낙 가격이 바닥이었으니 당연한 반등이기도 하다. 


그러나 양돈시장과 삼겹살집은 불안하기만 하다. 아프리카돼지열병(ASF) 때문이다. 정부에서도 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했다. 그러나 내부적으로 보면, 우려에 비해 대응 수준이 낮다는 지적도 많다. ASF는 구제역과 달리 직접 접촉에 의해 발병한다. 구제역은 공기 중에도 전파된다. 상대적으로 전염성이 낮아보이지만, 방역의 틈이 촘촘하지 않으면 치명적이다. 백신도 치료약도 사실상 없기 때문이다. 걸리면 죽는다. 중국은 세계 돼지의 절반을 생산하는 엄청난 축산국가다. 그 돼지의 30% 정도가 죽은 걸로 업계에서는 판단하고 있다. 수입 돼지고기로 벌충하면서 겨우 버텼다는 게 업계의 진단이다. 안 그래도 수입 돼지고기는 크게 오를 조짐이다. 중국은 인접 국가로서 우리와 여러 가지로 복잡한 관계에 있다. 돼지고기도 마찬가지다. ASF는 철저한 차단방역이 최선이다.


발병 국가인 중국에서 순대, 족발 등의 요리를 가져오는 여행객이 더러 있다고 한다. 과연 우리는 이 병을 방어할 수 있을지. 만약 들어온다면 축산가, 삼겹살집과 거의 대부분 식당의 큰 피해가 불 보듯 훤하다. 더 긴장해야 하는데, 그럴 준비가 되어 있는지 모르겠다. 식당으로 먹고사는 사람들이 최근 죽을 맛인 건 주지의 사실. ASF까지 온다면.


<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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