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식빵의 추억

옛날에 엄마가 해주시던 간식은 아주 다양했는데, 간혹 놀라운 것도 있었다. 카스텔라나 도넛(도나스라고 불렀다)이었다. 카스텔라는 그저 완제품으로 된 가루에 계란과 설탕, 물을 붓고 막 보급되기 시작하던 전기밥솥에 찌는 방식이었다. 그다지 맛이 없었던 것 같다. 맛있었다면 지금도 살아남아 있을 테니까. 도넛은 아주 초보적인 방식이었는데, 요즘 전문가게에서 파는 걸 상상하면 안된다. 시장에서 파는 옛날식이랄까, 그런 모양과 맛이었다. 밀가루 반죽에 베이킹파우더를 넣고 부풀려서 돼지기름에 튀긴 후 그냥 설탕만 묻힌 것이었다. 문자 그대로 꿀맛이었다. 하지만 엄마가 발효를 이해한 것 같진 않아서, 부풀리기나 식감이 들쑥날쑥했다. 그래도 어린 시절 달콤함 더하기 빵이라는 조합은 훌륭했다. 70년대는 분식의 시대였다. 샤니, 삼립, 콘티넨탈 같은 유명 제빵 회사들이 빵을 공급했다. 요즘 말로 배송 및 영업사원 격인 아저씨들이 ‘구루마’에 빵을 싣고 산동네 구멍가게까지 빵을 배달했다. 요즘 잘 나가는 유명 제빵회사 파리바게뜨는 이런 시기를 거쳐서 성장한 것이다. 오만 가지 빵이 있었지만 특별한 기억이 나는 제품은 ‘곱빼기’였다. 식빵을 썰어서 가공한 샌드위치는 대개 식빵 두 장 사이에 땅콩크림이나 슈크림, 딸기크림 같은 걸 발라서 포장해서 파는 게 보통인데 곱빼기는 한 장이 더 많았다. 곱빼기는 원래 두 배를 뜻하는 게 아니라 1.5배 정도를 말한다(짜장면 곱빼기를 생각해보면 된다). 그 식빵은 범상한(?) 종류가 아니었다. 당시에는 따로 부르는 이름이 없었던 ‘식빵 탄 부분’, 즉 가장자리에 갈색으로 탄 빵으로 만들었다. 촉촉한 샌드위치 제품을 만들면 남게 마련인. 그걸 곱빼기라는 이름으로 유효적절하게 활용했던 것이다. 버리지 않고 써먹되, 대신 한 장을 더 주자!



식빵이란 이름은 일본이 유럽에서 받아들인 이 ‘덩어리 빵’에 명명한 것이었다. 식빵이란 과자나 간식이 아니라 식사용으로 먹는 빵(食パン쇼쿠팡)이란 뜻이었다. 그 이름이 한국에 전해져 식빵이 되었다. 기억나는 식빵이 있다. 고등학교 시절 배는 고프지, 빵은 먹고 싶지 제과점에 앉아서 식빵을 시킨 후 설탕을 좀 달라고 했다. 썰지 않고 통으로 내온 식빵을 죽죽 찢어서 설탕에 찢어먹으면 기가 막혔다. 돈도 안되는 손님에게 설탕까지 내주었던 고마운 제과점이었다.


마리 앙투아네트가 빵을 달라는 시위대에 했다는 말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지 않소”란 속설은 허위란 얘기도 있다. 어쨌든 그이가 빵이라고 지칭했던 것은 브리오슈라는 황금의 빵이었다. 식빵과 굽는 방식은 비슷하지만, 당시로서는 아주 귀한 달걀과 버터를 듬뿍 넣은 것이었다.


요즘 동네 골목마다 작은 식빵 전문집들이 많이 생겼다. 다수가 먹고살기 위한 청년들의 가게다. 한 가지 음식만 열심히 만들어서 장인이 되고자 하는, 소박한 꿈을 가진 분들이 많다. 원래 단순한 듯한 게 더 어려운 법. 식빵 굽기는 제빵사들이 고개를 젓는 까다로운 기술이다. 생활인으로 장인으로 살고자 하는 그들의 식빵을 응원한다.


<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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