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돼지고기 ‘판’을 갈아야 할 때

이미 작년의 일이지만, 돼지고기 가격(돈가) 하락이 심각하다. 원래 돈가는 일정한 패턴을 보인다. 구제역 등이 없다면 조금씩 올랐다가 내려가기를 반복한다. 계절도 탄다. 이상하게 작년 여름, 돈가가 안 올랐다. 휴가철 특수가 있는데도 삼겹살이 남아돌았다. 어느 신문에서는 “황금돼지해, 돼지값 싸져서 실컷 먹을 수 있다”는 기사를 실었지만,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돈가를 안정시킨다고, 여기에다가 주요 무역국과의 교역 문제 때문에 수입돈이 늘어난 게 가장 큰 요인이다. 돼지고기가 많이 수입되면 가격이 내려가서 소비자(국민)도 좋은 게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위의 신문 기사가 그런 논조다. 그렇다면 축산가는 국민이 아닌가. 그동안 축산 농가는 이런저런 당국의 불편한 처사에도 입을 꾹 막고 살았다. 수입 물량을 늘려도 국산돈의 품질로 돌파하자고 허리띠를 졸라매거나, 손님은 좋은 국산 돼지고기를 알아준다는 심리적 방패가 있었다. 수입돈 품질이 그다지 좋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천만의 말씀이다. 판도라의 상자 같은 이야기지만, 수입돈의 품질이 국산돈을 능가하는 부분도 많다. 스페인산 고급육은 어지간한 고깃집 광고판에서 발견하는 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베리코 돼지 삼겹살, 목살구이 팝니다.”


선호 부위의 차이 때문에 외국의 삼겹살과 목살 등의 국제가격이 워낙 싸서, 수입 물량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유럽산은 거의 냉동이 유통되지만, 미주 지역은 특별 수송체계를 갖추고 냉장육도 대량으로 들여오고 있다. 몇몇 마케팅 업체에서는 테스트를 통해서 수입육이 국산육과 구별하기 어렵다는 공세를 펼치고 있다. 품종이 비슷한 데다, 사료도 거기서 거기이니 맛이 크게 다를 리 없을 수도 있다. 


최근 돼지 동결육이 늘고 있다는 시장의 소식이 들려온다. 미처 팔지 못해서 시급히 냉동하는 것을 애초에 냉동하는 것과 구별하여 동결이라고 한다. 최고가여야 할 괜찮은 국산 목살이 동결되어 돼지 뒷다리만도 못한 처참한 가격에 팔리고 있었다. 삼겹살도 마트 등에서 파격가로 팔린다. 킬로그램당 소비자가격이 1만원대에 풀리고 있다. 생산농가는 심각한 손해를 보고 있다는 뜻이다. 돼지고기는 1970년대 이후 생산량이 크게 늘면서 국내 육식 수요의 상당수를 충족하고 있다. 순댓국이나 족발 같은 서민 음식의 재료가 되는 부산물도 많이 생산한다. 어떤 재료가 지나치게 싸게 팔린다는 건 곧 그 산업이 위기에 처했다는 강력한 신호다. 듣기로는, 미·중 관계가 악화되면서 판로가 막힌 북미산 돼지고기를 밀어내는 시장으로 한국이 선택됐다고 한다. 삼겹살 불판을 갈자고 했던 분이 노회찬 의원이다. 이제는 다른 의미에서 돼지고기 판을 갈아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적정 가격이란 안정성을 보장하는 것이고, 이는 국민 모두에게 이익이다. 급격한 폭락은 산업구조의 뿌리를 흔든다. 싸다고 무작정 이익이 아닌 시스템 아래에 우리는 살고 있다. 축산가와 고기유통에 종사하는 국민은 국민이 아닌가. 격변하는 시장이 어떻게 움직일지 불안한 요즘이다.


<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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