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다 먹자고 하는 일인데

페이스북이 5년 전의 추억을 상기시켰다. 머리엔 머플러를 친친 동여매고 입을 수 있는 건 무엇이든 걸치고 시장 바닥에서 떨며 밥을 먹는 여인들의 사진이었다. 나는 아마도 이 사진을 자갈치시장에서 찍었던 것 같다. 나는 짧게 사진의 제목을 달았다. “이런 장면에 ‘삶의 현장’ 따위의 설명을 붙이지 말자.” ‘삶은 이어진다’ 같은 것도 별로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고통스럽지만 그들은 그들의 삶을 살아내는 것이라고. 그것이 일상이라고. 그것을 운명이라든가 국외자의 시선을 실어서 감상적인 말로 수식해서는 곤란하다고.

 

 

언젠가 한 요리사 친구가 실직했다. 그야말로 쌀독에 쌀이 떨어졌다. 라면도 떨어졌다. 어느 날 밤에 귀가하는데, 집이 컴컴하더란다. 요금 체납으로 전기도 끊긴 것이다. 인터넷이 거의 없던 시절, 어디선가 정보를 듣고 북창동 새벽 인력시장에 나가봤다고 했다. 차가운 겨울바람이 골목에 불어닥쳤다. 아직 해가 뜨지 않은 겨울날이었다. 그는 그날 일을 얻지 못했다. 인력사무소 사장이 “칼판 두 명, 불판 두 명!”을 외쳤다. 중식당 전문 인력시장이었다. 그는 양식 전문이었으니 빈손으로 아침 전철을 타고 귀가했다. 마침 출근시간이었다. 전철 안은 송곳 꽂을 틈도 없이 승객으로 꽉 차 있었다. 고통스러워 보이는 만원 전철 안의 승객조차도 그는 부러웠노라고 했다. 그래도 그들은 밥을 벌러 어디론가 가고 있었으니까. ‘벼룩시장’을 보고 결혼식장 뷔페에 주말 아르바이트를 나갔다. 소갈비 상자를 옮기다가 다쳤다. 허리 근육이 쥐어짠 빨래처럼 뒤틀리더라는 것이었다. 주방장의 선처로 일당을 받아들고 조퇴했다. 그는 동네에서 두부며 반찬거리를 사다가 막걸리집에 주저앉았다. 대낮에 한 잔 마시는데 밖에 마침 눈이 펑펑 내렸다고 한다. 술잔에 눈물이 떨어졌다. 나는 이 얘기를 그 친구와 막걸리를 마시면서 들었다. 함민복은 <눈물은 왜 짠가>라는 수필을 썼다. 친구의 막걸리잔도 짰을 것이다. 울고났더니 거의 맹목적이라고 할 정도로 한 가지 생각밖에 들지 않더라, 새끼들 입에 밥은 넣어야 하겠다, 뭐라도 하겠다는 투쟁심 같은 것이었다고 말했다.

 

예전에 회사 다닐 때 아주 깐깐하고 팍팍한 선배가 있었다. 말을 직설적으로 해서 좀 불편한 사이였다. 그가 점심시간이 되자 내게 말했다. “다 먹자고 하는 일인데, 먹고 하자. 어디 가서 뜨거운 국물이라도 마시자.”

 

이상하게도 그 선배에 대한 평소의 서운함이 싹 사라지는 말투였다. 다 먹자고 하는 일인데, 이 말. 우리는 언젠가 죽을 것이고, 삶의 대부분은 먹자고 일하다가 보낸다. 그 먹는 일의 일상이 소중한지 잘 모른다. 하루에 두 끼, 세 끼 이어지는 일이니까. 그럴 때마다 나는 생각한다. 저 칼바람 속에서 머플러 쓴 시장 여인들의 숟가락질, 친구의 짠 막걸리잔, 그리고 선배의 한마디. 눈 오는 날, 마음이 더 추운 사람들이 오늘도 한 끼 밥을 잘 먹을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세상이 조금이라도 더 좋아져 밥다운 밥을 먹을 수 있기를. 그렇게 되기를.

 

<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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