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조사인지는 몰라도,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장래희망 직업에 요리사가 모두 10위 안에 들었다. 초등학생은 심지어 4위였다. 응답자들이 직업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결정한 후에 답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도 요리사가 요즘 세상에 어떤 모습으로 비춰지는지 살펴볼 수 있는 힌트였다. 옛날에 의사의 세계를 다룬 드라마가 있었다. 당시엔 인터넷이 없었고, 아마도 PC통신을 통해 의사들의 감상평이 돌았다. 하나같이 사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었다. 레지던트들이 언제 저렇게 연애하고(드라마에 연애가 빠질 수 없으니까) 얼굴이 반들반들하냐는 것이었다. 두어 시간밖에 못 자서 푸석푸석하고 머리는 까치집이며, 연애는 고사하고 외박도 거의 나가기 힘든 저연차 레지던트들의 악성 근로환경에 대한 고발도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시청자들은 드라마에서 보여주는 의사들의 일상을 현실로 받아들인다. 외국의 한국드라마 시청자들이 한국인들은 모두 멋지고 옷 잘 입고 폼나는 사람들만 있다고 깊은(?) 오해를 하고 있는 것처럼.
요리사들이 TV에 등장한 것은 오래된 일이 아니다. 이제는 이른바 스타셰프, 셀럽 셰프라는 말도 생겼다. 매니저를 대동하고 다니는 경우도 있어, 일로 통화하려면 매니저를 통해야 한다고도 한다. 하얀 제복, 멋진 칼솜씨, 여기에 입담까지 갖춘 연예인급 요리사가 대중스타가 되었다. 대중과 미디어는 늘 새로운 사람을 원한다. 요리사는 그 수요에 부응하는 멋진 직업인이었다. 이미 외국에서 검증된 일이기도 하다. 외국에서는 요리쇼를 한번 하는데 초청비가 1억원이 넘는다. 1등석 비행기표를 제공해야 하는 요리사도 있다. 우리가 아는 ‘주방장 아저씨’와 그들은 전혀 다른 세계에 산다. 한국도 미디어를 통해서 요리사의 이미지가 만들어지고 가치가 올라갔다. 그러나 극소수의 얘기다. 요리사들은 여전히 찬물에 손 담그고 있느라 가벼운 동상에 걸린 것처럼 붉게 부어 있기 일쑤고, 온갖 산업재해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으며 결정적으로 박봉이다. 식당업이 영세한 탓에 여전히 많은 요리사들은 최저임금을 받는다. 장시간 노동이 흔하며, 작업장 환경도 좋지 않다. 건강에 안 좋은 기름 연기와 연료에 노출되어 있고 좁은 곳에서 일하다 보니 스트레스도 많다. 더구나 오픈된 주방이거나 까다로운 손님을 맞을 땐 3차 스트레스도 받는다. 1차가 고용주, 2차가 동료, 3차는 손님인 셈이다. 언제든 그들은 식당과 음식평을 개인 미디어에 올린다. 그것이 신선한 자극이 되기도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해명할 수 없는 일방적인 스트레스가 되기도 한다.
대다수 요리사는 우리 주변 평범한 직업인이다. 요리사를 꿈꾸던 많은 이들이 초기 단계에서 포기한다. 요리사 지망생은 많은데, 식당은 늘 구인에 어려움을 겪는다. 전국의 수많은 요리학과 졸업생 중 요리사로 직업을 이어가는 비율은 아주 낮다. 요리사의 현실을 보여준다. 요리사가 멋있어 보이는 건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현실 속 요리사는 그다지 행복하지만은 않다. 알고 보면, 그렇지 않은 직업이 어디 요리사뿐이겠냐만.
<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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