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이용재의 건축과 음식 사이

댁의 자녀가 건축과 진학을 고려할 때 따져봐야 할 가장 기본적인 사항들


이런 주제에 대해서는 글을 써야 되겠다고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별로 없는데, 내일이 수학능력시험날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니 한 번쯤 다뤄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만약 댁의 자녀가 건축과에 진학하고 싶다면 어떤 기준으로 판단을 내려야만 할까? 돈을 비롯한 아주 현실적인 측면에서부터 자녀의 재능계발과 이상실현에 이르는 아주 이상적인 측면까지, 판단에 필요한 요소가 무수히 많다. 시간을 두고 이 주제에 대해 계속 쓸 수 있을지 잘 모르겠지만, 일단 그 시작으로 가장 현실적인 측면에 대해 이야기해보기로 하겠다. 물론 여기에서 ‘건축과’라고 하는 것은 설계를 위한 5년제 과정임을 미리 밝혀둔다(사실 5년제가 아니라도 상관은 없다. 어차피 가장 기본적인 이야기를 할 것이기 때문에).

대학을 졸업한지도 여러 천 년이라, 요즘 대학 등록금이 얼마인지 몰라 잠시 검색을 해 보았다. 내가 사립대학을 나왔으니 그 기준으로 찾아보니 어림잡아 400~500만원 사이로 보인다. 건축과의 경우, 거기에 부가 비용이 만만치 않게 들어가는 편이다. 만약 미술이나 음악 등, 실기가 수반되는 전공을 선택하는 학생이라면 최소한 중고등학교 때부터 쭉 준비를 해 왔기 때문에 그러한 부분에 대해서 심리적인 준비가 되어 있겠지만, 건축과의 경우에는 대부분 이과에서 바로 진학하기 때문에 미처 생각이나 준비를 못 할 경우도 있다. 그렇다면 어떤 비용이 들어가는가? 기본적으로는 미술 전공을 하는 학생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는데, 한 번 하나하나 따져보기로 하다.


1. 도구 및 재료비

안타깝지만 건축은 맨손으로 할 수 없다. ‘종이와 만년필이면 이름 대신 남길 수 있는 건물을 디자인할 수 있다’라는 분들도 계신 걸로 알고 있지만 그런 단계가 의미있고 또 가능하다고 해도 거기까지 이르는 데는 많은 도구와 재료가 필요하다. 다행스럽게도 물감과 같은 색 관련 재료들을 아주 많이 쓰지는 않기 때문에 그런 쪽으로는 돈이 들어가지 않지만, 기본적인 미술(소묘 및 조소)재료와 비슷한 종류의 재료와 도구를 갖추어야 한다. 요즘은 많이 3차원 그래픽 시뮬레이션으로 충당할 수 있게 되었지만, 모형을 만들면서 디자인 안(案)을 발전시키는 그 과정이 중요하기 때문에 여러 종류의 판지부터 얇은 나무판, 그리고 그러한 판재들을 자르는데 필요한 칼이며 기타 도구들을 갖추어야 한다. 물론 이러한 도구들은 가장 기본적인 것들이고, 시간을 거듭할수록 필요한 도구들을 하나하나 더하기 시작하는데 다다익선이라 끝이 없다. 결국 몇 년이 지나면 공구함 같은 데에 도구를 담아가지고 다니는데, 때로 이게 지적허세와 같다는 생각마저 하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이러한 도구비 및 재료비에는 대형 출력물의 출력비와 같은 비용이나, 고사양의 컴퓨터 구매 비용마저도 집어 넣을 수 있다.

              


2. 책값

이 또한 인터넷 시대에 널린 공짜 자료들로 인해 내가 대학에 다니던 시절보다 완화되었다고 할 수 있겠지만, 건축을 공부하는 데는 책값이 많이 들어간다. 여기에서 말하는 ‘책’이라는 건 몇 가지 다른 범주의 것으로 세분화할 수 있다.

-기본 교과서: 당연히 필요하다.

-소위 말하는 ‘작품집’: 유명 건축가들의 ‘작품’을 모아놓은 그림책. 한마디로 유명한 건축가들의 포트폴리오나 다름없기 때문에 양장본에 두껍고 무겁다. 국산은 없고 수입품을 사야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론서적: 웃기는 건, 건축과를 가려면 이과를 통하는 경우가 대부분일 텐데, 학문의 특성상 인문학, 특히 철학에 기댄 이론을 배우게 된다. 이러한 책들도 만만치 않은 양으로 시중에 나와 있으니 이쪽 분야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사보고 싶어질 수밖에 없다. 딱히 건축만을 다루고 있지 않더라고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철학자들의 저서 역시 이 범주 안에 집어넣을 수 있다. 그렇게 범주를 넓히다 보면 모든 일반교양 및 취미를 위한 책들마저 포함될 수 있다.

-정보서적: 건축의 어떤 분야는 숫자를 포함한 정보로만 대부분이 이루어져 있기도 하다. 예를 들어서 계단을 디자인한다면 길이(또는 넓이)와 높이는 정해진 기준을 따라야만 한다. 이러한 부분은 법적인 강제성을 띄고 있기도 한데, 이러한 정보가 담겨 있는 책들만 또 따로 필요한 경우도 있다.

3. 교양 및 품위 유지비

자식이 훌륭한 건축가가 되기 위해 영감을 찾을 수 있는 여행을 떠나겠다는데, 어떠한 부모가 말리겠는가? 형편이 허락하는 대로 보내주고 싶을 것이다. 물론 여행이라는 것이 모든 자라나는 청소년, 혹은 20대에게 정신적인 자양분으로 필요하겠지만, 건축과 학생들에게는 정말 중요한 학습의 요소 가운데 하나이다. 늘 책에서만 보던 건축물을 실제로 보고, 그 공간을 느끼는 것은 전혀 다른, 초월적인 경험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 드는 돈은? 굳이 내가 상세히 언급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싶다. 다만, 정말 건축을 목적으로 떠나는 여행은 일반 배낭여행보다 더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점만 덧붙이고 싶다.

4. 기타 잡비

대부분의 건축과 학생들이 스튜디오를 집 삼아 밥도 먹고 잠도 자고, 또 밤도 샌다. 집 떠나면 모든 게 돈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 돈은 물론 순수한 밥값일 수도, 내일이 발표인데 잘 빠지지 않는 설계 때문에 울화통이 터져 옆자리 학생과 마시는 소주값일 수도 있다.

 

물론 여기에서 언급한 비용들이 반드시 다 필요한 것은 아니다. 기본적인 도구로 칼과 칼판, 그리고 자 몇 개면 갖추면 어떻게든 뭔가 할 수 있고, 재료도 꼭 필요한 것만 사고 나머지는 옆자리 친구들에게 굽신거리며 얻거나 스튜디오에 굴러다니는 걸 주워서 써도 된다. 책도 웬만한 건 도서관에서 빌려보면 되고, 인터넷으로 건물 사진을 찾아볼 수도 있다. 배낭여행? 그거 간다고 멀쩡한 사람이 영감 넘치는 건축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돈 없으면 안 가면 그만이다. 이 모든 것이 물론 다 선택이기는 하지만, 건축과의 문화라는 것이 현실적인 측면에서 이러한 분위기를 띄고 있다는 점을 설명하려는 것이다.

만약 이러한 현실적인 측면들을 모두 투자라는 측면으로 고려한다면, 거두는 결실에 대해서도 당연히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자식농사라는 것이 사과농사와 같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인생은 기회비용으로 넘쳐나는 사건사고니만큼 보다 더 적은 돈을 들여 원하는 걸 공부하거나, 아니면 막말로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직업을 선택한다면 그보다 더 좋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학교에 다닐 때 자조적으로 가장 많이 주고받은 농담이 있는데, 그건 ‘의대생 말고 다른과 학생들이 우리보다 바쁘다고 하는 건 절대 믿지 않는다’였다. 물론 이건 물리적인 노력에 대한 농담이기도 하지만, 재정적인 노력에 대한 농담으로 해석해도 아무런 무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위에서 언급한 측면들에서 골고루, 평균적으로 돈을 써서 건축회사에 취직하게 된다면 과연 그 투자비용들을 이성적인 속도로 거둬들일 수 있을지, 그것 또한 고려해야만 한다는 의미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할 수 있고 또 민감한 주제이기 때문에 성급한 일반화는 하고 싶지 않은데, 소위 말하는 ‘클라이언트’에 기반한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건축이 광고홍보나 IT와 비슷한 것 같다는 의견을 제시하는 것으로 생각의 권한을 읽는 사람들에게 넘기기로 하겠다. 남의 월급에 대해 가타부타 말하고 싶지는 않으니 궁금한 사람들이라면 위 업종에 근무하는 주변 사람에게 연락해 조심스레 물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단, 개인적으로는 광고홍보나 IT보다 건축의 보수 규모가 적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족 1: 검색을 해보니 단국대학교가 작년에 건축과 지원학생들을 대상으로 실기시험을 치렀다고 한다. 문제를 보았는데... 나중에 글을 한 번 써 볼까 한다. 

*사족 2: 남의 인생에 감 놓아라 배 놓아라 할 생각은 없지만, 혹시 건축과에 진학하고 싶은데 정보가 없어서 갈등하는 학생이 있다면 정보 공유 정도는 할 수 있다. 이 링크를 따라 “본가”에 가면 있는 메일 주소나 트위터 계정을 통해 연락을 주시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