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이용재의 건축과 음식 사이

요리 프로그램의 전문성 결여


텔레비전에 얼마나 많은 요리프로그램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 일부러 관심을 가지고 보지는 않기 때문이다. 가끔 우연히 EBS의 프로그램을 보게 되는데, 요리 전문가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나와서 아마추어 같은 모습을 보여주므로 그걸 보는 재미에 채널을 고정시킬 때가 있다. 

그런 요리 프로그램을 보고 있노라면 과연 ‘전문가’라는 것이 어떻게 정의 내려지고 있는지, 그걸 헤아릴 수 없어 난감할 때가 있다. 네이버 사전은 전문가를 ‘어떤 분야를 연구하거나 그 일에 종사하여 그 분야에 상당한 지식과 경험을 가진 사람’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한 마디로 많이 알아서, 그 또는 그녀의 의견이 권위있게 받아들여진다는 의미인 것이다. 문제는 지식과 경험인데, 이 요리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전문가들을 보면 지식보다는 경험만으로 다가선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전문가 취급을 받는 사람들이 내놓는 음식이나 그 레시피도 솔직히 어이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보다는 지식이나 이해 그 자체 또는 전달 의지의 부재가 두드러진다. 맨 위에 올린 사진은 요리프로그램에서 튀김을 만들기 위해 냄비를 불에 올려놓은 장면을 찍은 것이다. 저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요리 관련 프로그램에서 튀김을 만드는 걸 보여줄 때, 정말 튀김하기에 적합한 냄비를 쓰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 


가장 상식적으로 생각해본다면, 튀김을 하려면 기름을 아주 뜨겁게 데워야 한다. 그러자면 단열이 가장 중요한데, 음식을 만들 때 단열 효율을 높이려면 가능한 벽과 바닥이 두툼한 솥이나 냄비를 써야만 한다. 뭔가 정체를 알 수 없는 ‘논스틱’ 코팅이 된 것으로 보이는 냄비는 얼핏 보아도 굉장히 조악해 보여서, 그래도 공중파 방송의 요리프로그램인데 저렇게 조잡해 보이는 수준의 주방기구를 쓸 수 있을까 싶을 정도다. 내가 보았던 대부분의 방송에서는 저런 수준의 냄비에 기름을 데워 튀김을 만들었다. 

사실 튀김이라는 것은 집에서 만들기 번거로운 음식이다. 기름의 처리며 안전 문제도 만만치 않지만, 그보다는 기름을 적정한 온도로 맞추는 것이 더 힘들다. 튀김의 원리 또는 의미는 사실 재료의 보호이다. 옷을 입혀 튀김으로써 재료의 수분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는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튀김의 재료로써 기름기나 수분이 적은 것이 더 적합하다. 탕수육의 재료로 쓰는 돼지고기로 기름이 거의 없는 안심과 같은 부위를 쓰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아직도 가지고 있는 20여년 전의 요리책을 보면, 튀김을 위한 기름의 적정 온도를 설명하면서 집에서 그 온도를 가늠하기 위한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바로 소금이나 튀김옷을 넣어보는 것이다. 중간까지 가라앉았다 뜨면 150도라는 식이다. 요리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언제나 소개하는 방식도 바로 이런 것이다. 방법 자체가 검증된 것인가의 문제와는 별개로, 튀김기름 온도 측정을 위한 온도계를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는 요즘의 현실에서도 과연 몇 십 년 전부터 쓰던 주먹구구식 방법만을 고수해야할 필요가 있기는 한 건지, 그게 궁금하다. 

전문가가 출연하는 프로그램이라면 2~3만원이면 살 수 있는 온도계를 냄비에 꽂아놓고, “성공적인 튀김을 위한 온도는 XXX에서 OOO도 사이입니다”라며 보여주는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누군가는 어렵지 않게 대중에게 다가서기 위해 일부러 온도계를 쓰지 않는거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그럴수록 더 정확한 지식을 전달하는 편이 맞는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튀김을 집에서 하는 사람도 별로 없거니와, 주먹구구식으로 온도를 맞춰 튀김을 만들었다가 실패한다면 다시 만들고 싶어지지 않을 확률이 더 높기 때문이다. 차라리 한 번을 하더라도 정확하게, 실패 없이 만드는 법을 알려줘서 음식 만들기에 재미를 붙이도록 도와주는 것이 진정한 전문가의 역할일 것이다. 음식만큼 재미가 안 붙으면 만들기 싫은 것도 없다. 


프로그램에서 소개되는 음식이나 조리법은 어차피 각 “전문가”의 연구 또는 상상력의 산물이므로 굳이 트집을 잡고 싶지는 않은데, 때로 아예 음식이나 재료 자체에 대한 이해가 없는 경우도 볼 수 있다. 사진의 음식은 어린이들의 간식을 위한 감자튀김이라고 하는데, 감자에 계란 흰자를 묻히고, 거기에 다시 녹말을 묻혀 기름에 튀겨낸다. 굳이 번거롭게 그런 과정을 거치는 이유가 검정깨 몇 알을 붙이기 위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어차피 그 자체가 전분인 감자에 또 전분을 묻혀서 튀길 필요가 있는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감자를 그냥 얇게 저며 튀기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간식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저런 접근은 어떤 면에서 보면 재료의 특성이 무엇인지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굳이 이런 종류의 프로그램이 아니더라도, 텔레비전의 음식 소개 프로그램은 한마디로 무개념인 경우가 많다. 최근 우연히 보았던 프로그램에서는 셰프라는 사람이 나와서 홍합을 깨수제비에 싸서 무청으로 묶은 뒤, 어묵과 함께 끓이는 음식을 선보였다. 바로 그 셰프라는 사람의 정체가 궁금해서 인터넷을 뒤져보았더니 이탈리아 음식을 공부했다던데, 요즘 이탈리아 요리학교에서는 저런 정체불명의 음식 만드는 법도 가르치는 모양이다. 자칭 ‘요리 연구가’라는 사람들의 연구 결과가 그런, 요리라고 할 수도 없는 음식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산지에서 나는 가장 신선한 재료로 좋은 음식을 만들겠다고 자신을 소개하는 사람이 저런 음식을 만들고 있으면, 매체에 노출되어 광고효과는 노릴 수 있어도 음식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본인의 정체성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생각하지 못하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참, 그 프로그램에서는 홍합을 재료로 한 음식이 소개되었는데, 연예인 일색인 출연진들은 다 같이 홍합이 ‘쫄깃쫄깃하고 맛있다’라고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웠다. 너무 오래 익혀서 질긴 홍합만이 쫄깃쫄깃한지 연예인들은 모르는 모양이다. 우리나라 매체에서 음식을 다루는 방식이라는 게 대부분 저런 식이다. 우리는 음식을 너무 우습게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