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이용재의 건축과 음식 사이

포장으로 보는 우리나라 농수산물 마케팅의 현실과 정체성

경기도 남부의 작은 도시에 살다 보니 전국 각지에서 오는 고속버스를 많이 보게 된다. 버스가 버스인지라, 옆구리에 붙은 광고판들은 상당수 지방 또는 그 특산물의 홍보를 위한 것들이다. 이런 광고를 유심히 보는 사람이 몇이나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대부분 유심히 볼 수도 없이 독창성이 딸리거나 디자인에 대한 특별한 고려가 없는 듯 영세한 느낌을 준다. 듣기로 지자체가 홍보를 통한 차별화, 또는 차별화된 홍보를 위해 고심한다던데 광고판들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정말 고심하는지 헤아리기가 어렵다. 썩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마케팅이 거의 전부나 다름없는 게 현실이데, 우리나라 농수산물 마케팅을 보면 판매를 통한 이득은 물론이거니와 상품의 존재 자체를 알리는 것조차 효율적으로 하고 있는지 궁금할 때가 있다. 



사진의 상자는 막 가을이 시작될 무렵 갓길에 차를 세우고 산 무화과의 포장이다. 아주 전형적인 우리나라 제품, 특히 농수산물의 포장으로 이것 하나만 놓고 보아도 마케팅의 현실을 쉽게 엿볼 수 있다. 일단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조금 거칠게 말해 난잡하다고도 말할 수 있는 포장 디자인이다. 일단 ‘컨셉트’라는 걸 들먹이는 건 사치나 허세 같다고 쳐도(그러나 왜?), 뭐 하나도 빼지 못해 강박적으로 이것저것 다 집어넣었다는 느낌만은 지울 수가 없다. 여러 글씨체를 이용한 제품 이름이나 낙관을 흉내 내 박아놓은 ‘명품’ 인증(대체 우리나라는 그놈의 명품 없이는 아무 것도 못하는 걸까?)이나, 특히 상자 날개에 붙은 ‘삼호의 자랑’과 같은 문구는 귀엽다고 생각될 지경이다. 제품 그 자체를 보여주고 싶었다면 차라리 투명 포장을 써서 진짜 과일을 보여주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 무화과라는 과일이 굉장히 약하기 때문에 배를 포장하는데 쓰는 스티로폼 망-무화과에 맞는 크기인-에 과일을 싸서 상자에 허술하게 넣은 모양새도 좋지 않았기 때문에 차라리 그런 방식이 나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공교롭게도 정면밖에 찍지 않았지만, 상자의 측면에는 무화과라는 과일의 효능에 대해 비교적 구구절절이 언급하고 있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옛 문헌에 따르면 무화과는...’과 같은 식이다. 우리나라 식품의 대부분이 홍보를 위해서 그 효능을 부각시키는 방법을 많이 쓰는데, 상식적으로 생각해볼 때 너무 뻔하다는 생각이 든다. 일단 대부분의 식재료라는 것이 잘 먹으면 몸에 좋은데다가, 그 효능이라는 것을 얻기 위해 대체 얼마나 많은 양을 먹어야 될지도 모른다. 8월말, 9월초에 아주 잠깐 나왔다가 들어가는 무화과의 효능을 얻으려면 아마 산지에서 올라온 분들의 트럭이 눈에 띄는 족족 들러 사 먹어야 되지 않을까 싶다. 

이렇게 식재료의 효능을 부각시키는 마케팅은 이제 도를 지나친 느낌까지도 준다. 동네 어딘가에 있는 반찬가게에서는 상황버섯을 넣은 김치나 갈비를 팔면서 ‘면역력 증가’를 얻을 수 있다고 가게 문짝에 크게 써 붙여 놓았다. 상황버섯이 정말 면역력을 증가시키는지도 검증을 거쳐야 할 문제이지만, 대체 얼마나 많은 상황버섯을 먹어야 되는지도 모르고, 그걸 김치에 넣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도 모른다. 그 집 앞을 지나칠 때마다 궁금한데, 김치는 웬만하면 자급자족하는 편이라 사먹을 생각은 하지 못했다. 


영세한 느낌을 주는 포장 디자인은 지방 자치체의 농수산물이 가지고 있는 태생적인 한계처럼 보인다. 사진의 술은 녹차로 유명한 보성에서 살 수 있는 녹차주이다. 원래 가게에 진열되어 있던 제품은 보다 더 세련된 느낌의 포장이었기 때문에 실제 판매용 제품을 받고는 그 촌스러움에 깜짝 놀랐다. 이러한 촌스러움에 놀라는 이유는, 이 결과물이 아예 전통적인 느낌을 살리자는 의도로 오래된 디자인을 고수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중국집에서 흔하게 시킬 수 있는 고량주 종류들의 제품 포장을 보면 촌스러운 느낌은 마찬가지지만 오래된 것을 고수하기 때문에 느껴지는 촌스러움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하지만 이러한 제품 포장이 가지고 있는 촌스러움은 그보다는 정확하게 원하는 방향이나 정체성을 정해놓지 않은 상태에서 새롭거나 오래된 디자인의 요소들을 편한 대로 뽑아 짜깁기한 산물이다. 우리는 우리 것을 외국에 알리고 싶어 하는데, 정확하게 어떤 형식으로 알리고 싶어 하는지를 모른다는 느낌을 준다. 인터넷을 뒤져보면 학생들을 대상으로 공모전도 하고 있고, 좋은 포장 디자인을 가지고 있는 제품 디자인도 간혹 보이기는 하지만 아쉬움이 가질 정도는 아직 아니다. 


이건 서울역 버스 정류장의 광고판. 어떤 포도주일지 먹어 보고 싶다는 궁금증은 있는데, 그와는 별개로 그냥 어느 프랑스 양조장의 이미지를 따온 듯한 포장 디자인은 역시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결국 모든 것은 정체성의 확립에서 시작되는 것인데, 거기까지 따지고 들어가면 우리는 결국 우리가 누구나 무엇인지 아직도 모르거나 생각하고 싶지 않아한다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어진다. 이것이 우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