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이용재의 건축과 음식 사이

닭고기 하나로 따져보는 다양성의 부재


닭가슴살이 인기를 누린지도 꽤 오래 되었다. 따지고 보면 맛보다는 그 효능 때문이다. 사실 효능이라고 말하기도 뭐하다. 그저 손쉽게 구할 수 있는 단백질이기 때문에 다이어트를 하거나 보다 좋은 몸매를 가꾸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는 것이다. 나도 냉장고에 거의 언제나 닭가슴살을 모셔두고 가끔 먹는다. 그러나 딱히 맛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건 닭가슴살 자체가 원래 딱히 맛있는 단백질이 아닌 것이 가장 큰 이유다. 닭은 흔히 ‘빈 캔바스(Blank Canvass)'라고 불리는데, 이는 돼지고기, 아니면 쇠고기와 비교해 보았을 때 닭고기 자체의 두드러지는 맛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양념의 맛을 잘 받아들인다. 게다가 닭가슴살은 운동을 하지 않는 근육이라 운동을 하는 다리살에 비해서 더더욱 맛이 없다. 운동의 성질에 따라 근육의 산소 사용 여부가 결정되는데, 가슴살은 운동을 거의 하지 않으므로 산소를 쓸 필요가 없고 따라서 혈액을 많이 가지고 있을 필요가 없다. 그래서 가슴살이 다리살보다 하얗고, 맛도 없는 것이다.

이렇게 기본적으로 별 맛이 없는 닭가슴살을 한술 더 떠 제조업체는 껍질과 뼈를 완전히 제거해서 내놓는다. 간편하게 조리하라는, 소비자를 위한 배려다. 배려는 고맙지만 그 덕분에 별 맛 없는 닭가슴살은 한층 더 맛이 없어진다. 고기의 맛이라는 것이 결국은 뼈나 지방에서 우러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삼겹살을 좋아하는 이유는 사실이 지방, 즉 비계 맛 때문이고 갈비 같이 뼈에 붙은 고기는 뼈를 잡고 먹는 맛도 있지만 그 뼈에서 나오는 맛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닭가슴살에는 아무 것도 없다. 게다가 지방도 뭐도 없으니 프라이팬에 구우면 정말 금방 익어버린다. 또 대부분의 사람들이 설익은 고기를 두려워하니 바짝 익힌다. 결국 원래 맛없는 닭가슴살은 프라이팬에서 너무 익어버려 고무처럼 질겨진다. 건강에 좋은 맛이 되는 것이다. 그냥 먹으라면 먹기 어려운 음식이 되어 버린다. 몸에 좋다니까 먹게 되는 것이다. 바람직한 운동과 식이요법으로 몸을 다듬었다는 사람들의 수기를 읽어보면 ‘토할 때까지 닭가슴살을 먹었다’라는 이야기를 종종 읽을 수 있다. 촉촉하게 잘 구워도 계속해서 먹기 힘든 게 닭가슴살인데 뻣뻣하게 구워 비린내도 물씬 풍기는 가슴살을 세 끼 내내 먹을 수 있는 사람은 아마 그 의지만으로도 살을 뺄 수 있을 것이다. 

원래 닭가슴살이 이렇게 맛이 없는 고기는 아니다. 뼈와 껍질이 붙은 통닭가슴살은 또 다른 이야기다. 이런 닭가슴살을 뜨겁게 달군 팬에, 껍질면이 불에 먼저 닿게 구우면 껍데기가 바삭바삭해져 닭가슴살과 좋은 식감의 대조를 이룬다. 게다가 껍질과 고기 사이에서 지방이 나와 그 맛이 한결 더 깊다. 그래도 닭껍질이 걱정된다는 사람은 구운 다음 벗겨내고 먹으면 된다. 그러나 껍질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맛에서 많은 차이가 난다. 뼈도 마찬가지다. 조리하는데 불편하다면 따로 발라내어 국물을 내면 흔히 말하는 ‘치킨 스톡’이 된다. 서양음식에서는 조리의 기본재료이고, 하다못해 라면이나 칼국수를 끓여먹는데 국물로 쓰면 그 맛이 한결 더 깊어진다. 조금 번거롭지만 맛이 훨씬 더 좋고, 가공비가 적게 들어가므로 가격도 뼈나 껍질이 없는 닭가슴살보다 저렴해질 수 있다. 

문제는 이렇게 뼈가 붙은 닭가슴살을 찾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양계업체에서 가공하는 닭가슴살은 예외 없이 뼈와 껍질을 제거해 하얗고 깨끗한 채로 판매한다. 정 이런 종류의 가슴살이 필요하다면 통닭을 사서 가슴살을 발라내는 유난을 떨 수도 있지만, 그게 또 그렇게 간단한 문제만은 아니다. 통으로 살 수 있는 닭과 부위별로 파는 닭은 그 크기가 다르다. 우리나라에서 통으로 파는 닭은 대개 1kg을 많이 웃돌지 않는다. 개인적으로는 그 정도 크기라면 가뜩이나 두드러지지 않은 닭고기의 맛이 채 여물었다고도 생각하지 않지만, ‘영계’며 부드러운 살을 좋아한다는 명목으로 그보다 더 큰 통닭은 적어도 마트 같은 곳에서는 구하기 쉽지 않다(시장의 닭집이라면 사정이 다를 것이다). 그 정도 크기의 닭이라면 어느 한 부분을 떼어내 봤자 먹을 게 사실 별로 없다. 백숙이야 사정이 좀 다를 수 있지만, 사실 통구이라면 1.5kg이상은 되어야 제대로 구워 먹을 수 있다. 가게나, 아니면 트럭에서 돌려가면서 굽는 닭들을 자세히 보면 크지도 않은 것들을 너무 오래 구워 기름기가 완전히 빠져있다. 십중팔구 뻣뻣해서 별 맛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것들을 ‘기름이 쪽 빠져서 맛있다’라고 팔거나 사먹는다. 닭이 삼겹살도 아니고, 기름이 얼마나 있기에 그것마저 빼야 되는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어느 주말에 닭다리살을 구워먹었다. 원래 목표로 삼았던 건 닭허벅지살 구이였다. 그러나 따로 가공된 다리살은 찾을 수 있어도, 같은 방식으로 가공된, 즉 뼈와 껍질이 모두 남아 있는 허벅지살은 구할 수 없었다. 찾아보니 그 부위는 다리에서 분리해서 살만 발라 팔고 있었다. 궁여지책으로 통다리를 사다가 뼈를 발라냈다. 원래 허벅지살의 경우는 생김새나 뼈가 붙어 있는 상태가 살만 발라내기 좋게 되어 있지만, 다리 즉 북채는 상황이 좀 다르다. 어쨌든 필요하지 않은 부분까지 사다가 손질을 해서 원하는 음식을 만들어 먹었지만, 정말 구할 수 있는 게 이 정도뿐인지는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와중에 강남의 백화점 식품 매장에 가게 되었다. 다른 백화점에서는 본 기억이 없었는데, 거기에서는 특이하게도 닭을 꽤 세분화해서 가공 및 판매하고 있었다. 내가 그렇게 찾아 헤매던 허벅지살도 다리에서 분리해서 따로 파는 아량을 보여주고 있기는 했지만, 안타깝게도 껍질은 말끔하게 벗겨낸 상태였다. 위에서 언급했지만, 껍질은 고기를 보호해주고 맛을 불어넣는 역할을 동시에 한다. 껍질이 바삭바삭해지도록 조리해서 먹어도 맛있고, 께름칙하다면 조리한 뒤 떼어내 버려도 된다. 그러나 가공하는 과정에서 벌써 떼어버렸기 때문에 아예 선택의 여지도 없었다. 저렇게 파는 고기로 다른 사람들은 어떤 음식을 해 먹었을지 궁금했다. 

아마도 그러한 식으로 가공, 판매하는 것이 대중화가 되지 않는 이유는 한편 그 조리방법이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서양음식의 경우, 어떤 식으로 조리하든 일단 아주 센 불에 냄비나 팬을 달궈 고기를 지져 거기에서 나오는 기름을 음식의 기본으로 삼는다. 그러나 이러한 조리 방법은 기름을 많이 내는 것은 물론, 지지는 것을 태운 것과 정확하게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사람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지 못한다. 이를테면 스테이크의 경우 덩어리진 고기의 겉면을 바삭바삭해질 때까지 지져서 얻는 식감의 대비가 맛의 대표적인 성격인데, 그렇게 해서 내놓으면 손님들이 탄 건 아니냐고 항의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어쨌든, 닭고기 하나만 놓고 보아도 크기나 가공 방법 등등으로 인한 다양성이 너무 떨어지는 것은 아니냐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