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이용재의 건축과 음식 사이

잠들지 못하는 도시와 빛 공해


아무 생각 없이 서울 시내에 나갔더니 온 시내가 반짝반짝했다. 원래도 휘황찬란한 도시지만, 연말연시 분위기를 내느라 그 반짝거림이 한층 더 했다. 

축제 분위기 같은 것에 찬물을 끼얹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해가 갈수록 이런 조명 장식들에 회의를 더 많이 느끼게 된다. 여기까지 이야기하면 누군가는 “아 그래, 뭐 전기는 결국 화석 연료를 태워 만드는 거니까 에너지 위기와 지구 온난화 따위를 숭고하게도 걱정하시느라...”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것도 고려해야할 사항이다. 어떻게 보면 가장 중요한 사안이기도 하다. 그러나 여기에서 이야기하고 싶은 건 조금 다른 문제이다.



환경디자인 인증을 가지고 있다. 미국의 Green Bulding Council에서 주관하는 것으로, ‘LEED'라고 일컫는다. 'Leadership in Energy and Environmental Design'의 약자이다. 건축은 그 태생이 자연으로부터 인간을 보호하기 위해서 생겨난 것이다. 따라서 자연의 시각에서 볼 때는 당연히 환경에 친화적일 수가 없다. 그러나 인간의 관점에서 환경에 미치는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건축 또는 디자인의 차원에서 개발한 인증 시스템이 바로 ’리드‘ 이다. 협회에서 인증한 가이드북이 있고, 이를 토대로 공부해서 시험을 본다. 일정 점수 이상을 받으면 합격이고, 인증서를 받게 된다. 이 인증서를 가진 디자인 인력은 건축 회사에서 리드의 가이드라인에 따라 환경 친화적인 디자인 프로젝트를 할 때 선도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쉽게 말해서 항목별로 체크리스트 같은 것이 있어서, 얼마나 많은 항목을 충족시키는가에 따라 점수를 매기고 그에 따라 등급을 나눠 인증을 한다. 신용카드처럼 ’플래티넘‘ 등급이 최상급이다. 이러한 건물은 실제로도 환경 친화적일 수 있지만, 요즘 같이 ’그린마케팅‘이 대세인 상황에서 홍보거리 노릇을 톡톡히 할 수도 있다. 

건물에 대중교통 이용 장려를 위한 자전거 주차장이나 샤워실, 재활용쓰레기 분리 수거장을 유치하는 것처럼 아주 일상적인 차원의 것부터 보다 전문적인 측면까지 고려하도록 되어 있는 이 인증 시스템을 공부할 때 가장 인상적으로 다가왔던 것은 바로 ‘빛 공해(Light Pollution)' 항목이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어두워야 될 상황에 밝은 것이 문제라는 의미이다. 물론 거기에 위에서 언급한 에너지 위기나 공해와 같은 측면도 얽혀 있기는 하지만, 그것보다는 개인의 안녕이나 건강의 측면에 더 신경이 많이 쓰인다.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들어가면 내보내야 하므로 배설을 하는 것처럼, 해가 진 이후의 시간이면 어두워야 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아마도 그것이 인간의 생리에 가장 도움이 되는 여건 또는 생활양식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대의 도시는 잠에 들기를 두려워하는 나머지 거의 언제나 밝다. 치안을 위한 가로등과 같이 반드시 필요한 사회 간접 자본들이야 그렇다고 치더라도, 우뚝 솟은 고층 빌딩에 넘쳐나는 조명들은 가끔 정말 필요한 것인지 궁금해질 때가 있다. 오늘날의 도시는 어쩌면 의미 없는 불야성이다. 그야말로 빛 좋은 개살구인 것이다. 


어둡고 밝은 정도를 조정하는 것이 단지 조명의 임무는 아니다. 그렇게 어둡고 밝은 정도를 어떻게 조절해서 인간의 건강에 도움이 되는가를 헤아리는 것이 중요하다. 위키피디아에서 ‘빛 공해’ 항목을 찾아보면 필요 이상 또는 부적절한 조명이 인간에게 미치는 나쁜 영향을 몇 가지 나열하고 있다. 두통이나 피로, 스트레스는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수준이고 형광등이 혈압을 올린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밤에 빛에 노출되면 멜라토닌 생성이 억제되어 여성들의 유방암 발병률 증가와 상관이 있을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 이런 연구 결과를 차치하고서라도, 어두워야 밤에 잘 수 있는 건 너무나도 본능에 충실한 욕구가 아닌가?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지나친 조명은 사람의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백화점 1층의 화장품 매장이 그렇다. 평소라면 눈에 잘 뜨이지 않는 잡티까지 보여야 화장품을 더 잘 팔 수 있다고 생각해서인지 화장품 매장의 조명은 가뜩이나 밝은 여느 백화점 매장들보다도 훨씬 더 밝다.  

얼마 전 벌어진 연평도 도발이나 기타 사회의 분위기까지 들먹이면서 굳이 이런 장식들을 요란하게 할 필요가 있는 건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로 한 숟가락의 찬물을 끼얹고 싶은 생각은 없다. 즐거워할 일이 있으면 즐거워해야 되는 건 맞고 나도 어느 정도는 즐겁지만, 저 정도까지 즐거워해야할 이유는 무엇인지 솔직히 궁금하다. 잠들지 않는 도시가 영화 속에서는 멋져 보일지 몰라도, 실생활에서는 그저 그렇다. 당신이 환하게 불을 밝힌 고층건물에서 매일 밤늦게까지 야근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보라. 그래도 이 도시가 잠들지 않아서 행복한가? 밤에는 자야하고, 또 잘 때는 어두워야 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도시도 잠을 좀 자 주어야 다음 날 아침에 더 활기차게 돌아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