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이용재의 건축과 음식 사이

아무나 손 못 대는 문화유산(?), 아파트


사람들이 아파트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다. 그러니까 건축을 업으로 삼지 않는 사람들이 아파트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다는 이야기다. 너무 좋아서 아파트에 산다는 사실을 감사하며 하루하루를 살까? 아니면 싫은데 별 선택이 없어서 그냥 살까? 어떤 생각을 할 여지는 있는 사실 그걸 잘 모르겠다. 별 다른 선택이 없이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싫어도 별 다른 선택이 없으면 왜 싫은지에 대해 잘 생각을 하지 않게 된다. 

그러한 맥락에서 때로는 열과 성을 다해 아파트를 미워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회의하게 된다. 몸에 배인 생활습관을 비난하는 듯한 기분이 자꾸 들기 때문이다. 내가 건축계의 분위기를 두루 꿰뚫을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그냥 상식의 수준에서 생각해봐도 아파트를 좋아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은 누구나 할 수 있다. 몇 해 전 한국 건축사 협회의 연구과제는 ‘아파트 말고 다른 주거 형태는 없나’였다. 책 몇 권만 들춰봐도 아파트의 해악에 대해 불을 뿜는 글을 쉽게 읽을 수 있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아파트 설계만 20년 넘게 한 전문가도 정작 자기 집은 “호젓한 시골의 전망 좋은 집”이라고 밝히는 기사도 있다. 오죽하겠나. 

학교에서도 아파트에 대한 설계수업을 한 기억이 없는데, 요즘은 어떤가 모르겠다. 다세대 주거를 의미하는 ‘집합주택’ 프로젝트는 해도 아마 드러내놓고 우리가 사는 것과 비슷한 형태의 아파트를 디자인하는 스튜디오는 없을 것이다(물론 각종 건설 또는 자재 회사 같은 곳에서 후원하는 학생 대상 설계 공모전이라면 있다). 가르치는 분들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을 확률이 높을 것이다. 물론 그런 분들도 아파트에 사실 확률이 높다. 그리고 당연히, 아파트를 짓는 건설회사의 설계팀에는 건축과 출신들이 일하고 있을 것이다. 야근도 할 것이다. 철야가 아니면 그나마 다행일지도 모른다. 현실이 이런데 아파트에 관한 수업이나 스튜디오는 왜 하지 않는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이렇게 천대받는 분위기지만, 사실 아파트만큼 디자인하기에 어려운 주거형태는 없다고 생각한다. 몇 센티미터에 민감한 분위기가 기본으로 깔려있기 때문이다. 정해진 면적의 틀 안에서 최대한의 가용 면적을 끄집어내야 한다. 워낙 아파트가 많으니 경쟁도 심하고, 또 그만큼 비교도 쉽다. 옆 단지만큼의 편리함과 넉넉함을 반드시 제공해야만 하고, 거기에 차별화할 수 있는 요소를 더해야만 한다. 그래서 아파트를 설계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스스로 짜놓은 틀 안에서 아파트는 나름 완벽하다. 거기에 반드시 고려해야만 하는 문화적인 특성까지 고려한다면 우리나라의 아파트는 독특한 문화유산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집=아파트’라는 공식을 적용하는 데도 큰 무리가 없으니 물리적인 것은 물론 감히 정신적인 문화유산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너무 극단적인 비유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들지만, 우리 나름의 것으로 변화, 또는 진화한 그 모습을 보면 아파트가 자장면 같기도 하다. 

이렇게 좋든 싫든 우리나라의 독특한 문화를 반영하기 때문에, 외국의 설계 사무소에서 아파트 디자인에 참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외국 유수의 사무실을 끌어들이고 그 이름값을 빌려 마케팅에 적극 활용하는 전략 또는 경향에서 아파트는 비교적 열외에 속해 있다. 자잘한 외관 디자인이야 어떻게든 손 댈 수 있겠지만, 핵심이 되는 평면, 즉 각 공간의 면적이나 공간들 사이의 관계 등은 손댈 수 없기 때문이다. 문화, 또는 생활 습관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건 사실 일천하지만 경험에서 바탕한 이야기이다. 

미국에서 우리나라의 아파트 관련 프로젝트를 위해 일할 기회가 두 번 있었다. ‘디자인 컨설턴트’라는 명목 아래 아파트의 디자인을 담당하는 우리나라의 설계사무소와 일하는 방식이었다. 처음 했던 프로젝트는 말도, 탈도 엄청나게 많았던 서울 모 지구의 재개발 주상복합 건물이었다. 저층부는 기단형의 상업, 고층부는 탑형의 주거 및 사무 공간으로 팀에서 평소에 두바이에 하던 프로젝트와 비슷한 구석이 있었으므로 비교적 무리 없이 원하는 서비스를 제공해 줄 수 있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이유로 프로젝트는 성사되지 않았다. 

그러나 두 번째는 사정이 조금 달랐다. 이번에는 경기도 모처의 재개발지구였다. 일단 단지 계획부터 시작을 했는데, 팀의 우두머리인 소장이 채워 넣은 도로, 보도 가운데 대다수가 쭉쭉 뻗어 있었다. 그러니까 직선이었다는 이야기이다. 오래된 아파트단지라면 모를까, 요즘의 아파트들은 단지 자체를 공원처럼 꾸미는 데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도로거나 보도를 막론하고 모든 길들이 꾸불꾸불한 곡선으로 계획된다. 그리고 거기에 시골의 오솔길 등에서 모티브를 얻어왔다고 마케팅하는 경우가 많다. 만약 이러한 점을 고려하지 않는다고 해도, 안전을 위해 차량이 시속 20킬로미터 내외의 아주 느린 속도로 달려야 하므로 직선 도로는 가능한 피하는 편이 좋다. 사실 이 상황을 완전히 문화적 차이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하기는 좀 어려운데, 비록 단층이기는 해도 미국의 대규모 아파트 단지 또한 곡선 도로를 많이 쓰기 때문이다. 

단지 계획이 끝내고 아파트 건물 디자인을 하게 되었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목표는 아파트의 평면을 건드리지 않는 범위 안에서 외관의 디자인을 다듬는 것이었다. 왜 그 정도 범위 밖에 안 되는 일만 해야하는지는 나를 포함한 팀의 한국 사람들이 이해하고 있었지만, 미국인들이 그걸 이해하기란 사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팀의 전담 “디자이너”는 사실 건축물보다 밥통과 같이 곡선이 살아있거나 심지어는 유선형인, 제품 디자인에 잘 어울릴 법한 형태를 습관적으로 만들어 내는 것으로 회사 내에 잘 알려져 있는 인력이었다. 나를 포함한 팀의 한국 사람들이 자잘한 디자인을 덧붙이는 아이디어를 내놓았을 때, 그는 또 한 번 우주선을 닮은, 둥글거나 매끈한 형태로 새롭게 다듬은 아파트 디자인을 선보였다. 프로젝트 매니저는 그 디자인을 극찬하면서 형태에 맞게 평면을 고치자고, 아니 손수 고치겠노라고 선언했고, 그걸 말리느라 회의는 거의 일촉즉발의 대립상태로까지 치닫게 되었다. 

물론 모두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어떤 미국인들은 다른 나라 문화에 대한 이해나 그를 위한 노력을 거의 기울이지 않는다. 일종의 자국 우월주의라고 할 수 있을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그걸 감지했기 때문에 기분이 굉장히 나빠졌다. 이 아파트라는 것이 그의 눈에는 심지어 웃겨 보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이 웃긴 것이 대체 어떤 문화적 배경 또는 그 문화적 배경을 만족시키려는 노력에서 나온 것인지, 그는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파트라는 주거 형태를 변호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 아파트가 진화해서 오늘날 존재하는 형태에 이르기까지 어찌 되었든 굉장히 치열한 과정을 거쳐왔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결론을 말하자면, 그는 적어도 평면을 그렇게 함부로 바꿀 수 없다는 것만은 이해하고 한 발 뒤로 물러났고, 밥통을 닮은 “디자이너”의 디자인도 적절히 타협하는 선에서 반영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