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이용재의 건축과 음식 사이

'쥐 식빵'과 빵의 측은한 현실


결국 ‘쥐 식빵’ 사건이 경쟁업체 주인의 자작극으로 판명되었다. 개인적으로는 지나치게 극단적인 전략이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남의 빵에서 쥐가 나올 수 있다면, 내 빵에서도 쥐가 나올 수 있을 거라고 소비자들은 생각하기 쉽다. 빵을 절대 잘 만든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사먹지도 않지만 그 정도 규모의 프랜차이즈라면 쥐가 나올 정도로 위생관리가 안 되는 것이 정말 가능한지, 그게 궁금하다. 유탕처리한 과자 같은데서 벌레가 나오는 것과 빵에서 쥐가 나오는 건 전혀 다른 사안이라고 생각한다. 그걸 생각해보지도 않고 행동에 옮겼다면 그 일을 꾸민 사람 또한 빵을 만들 줄은 알아도 빵에 대한 이해는 떨어진다고 말할 수 있다. 

성탄절 전후의 케이크 판매는 저조했다고 들었다. 상표를 막론하고 제빵류, 또는 대량 생산 프랜차이즈 빵집에 대한 믿음이 급락한 것이다. 짜장면을 먹고 체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다시 짜장면을 먹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다. 빵에서 쥐가 나왔다는 소식을 접한 사람에게 어쩌면 무슨 상표의 빵인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궁극적으로 ‘파는 빵’이 그렇다고 생각하기 쉽다. 사람에게는 자기가 기억하고 싶은 대로 기억하는 경향이 있다. 기억하기 쉬운 형식으로 머릿속에서 재가공하는 과정에서 특정 상표의 딱지는 떨어질 확률도 높다. 

개인적으로 우리나라의 제빵 산업에 아주 큰 불만을 가지고 있다. 그 불만을 한마디로 압축해서 표현하자면, ‘팔고 싶은 것이 빵이 아닌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팔리는 빵들은 대부분 밀가루 그 자체에 대한 고려가 없다. 늘 하는 이야기지만, 밀가루는 다른 재료, 특히 단맛 나는 것들을 위한 매개체, 즉 조연에 지나지 않는다. 팥빵의 예를 들자면, 빵이지만 밀가루 그 자체보다는 팥고물이 얼마나 맛있는지에 대해 더 신경을 쓴다. 빵 부분이 맛있어서 빵을 먹는 게 아니라, 고물이 맛이 있어 빵을 먹는다. 

사실 밀가루에 대한 고려가 없는 건 비단 빵에서만 벌어지는 문제는 아니다. 안 먹는 것도 아닌데, 우리나라에서는 이상하게 밀가루를 천대하는 경향이 있다. 발효를 시켜야 하는 빵도 그렇지만, 그렇지 않은 면류도 대강 만드는 집이 많다. 많은 중국집의 면은 탄성을 더해 잘 끊어지지 않게 만들기 위해 소다를 넣어 염기성을 보강해준다. 덕분에 면이 질기다 못해 고무줄 같이 느껴지는 곳이 많다. 그래서 밀가루의 소화가 잘 안 된다는 말이 나온다(물론 한방에서는 밀의 성질이 차기 때문에 먹지 말라는 경우도 있다. 서양 의학에서는 이러한 한의학의 주장에 어떤 견해를 보일지 궁금하다). 소화가 안 되는 것이 과연 밀가루의 문제인지, 아니면 못 만든 밀가루 음식의 문제인지 구분하기가 어렵다.

다시 빵으로 돌아가 보자. 발효가 잘 된 빵을 먹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김치나 장류 때문에 스스로를 ‘발효에 대해 잘 아는 민족’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우리나라에는 있다. 그렇다면 같은 발효식품인 빵도 잘 만들어야 될 것 같은데, 그렇지 못하다. 가장 큰 이유는, 시간의 이치에 맞서려 하기 때문이다. 물론 빨리 만들 수 있는 방법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잘 발효된 빵 한 덩어리를 만들려면 아무리 적어도 세 시간은 필요하다. 이것도 27도 정도의, 비교적 상온에 가까운 온도에서 두 번의 발효과정을 거쳤을 때의 이야기이다. 만약 맛을 더 발달시키고자 냉장고와 같은 곳에서 저온 발효를 시킨다면, 빵 한 덩어리를 만드는 데 사나흘이 걸릴 수도 있다. 공장에서 속성으로 생산하는 장류를 먹으면서도 마음만은 ‘우리는 발효식품 아는 민족, 장류는 항아리에서 오래 묵은 게 제 맛...’이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면 빵도 그렇게 만들어야 한다는 걸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 않으면 그런 빵들이 세를 경쟁적으로 불리다 못해 빵에 쥐까지 넣어서 자작극을 꾸며야 할 이유까지 있었을까? 

올해는 빵을 소재로 한 드라마가 선을 보였다. 드라마 덕분에 빵 매출에 좋은 영향이 있었고, 빵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도 많아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저런 경쟁관계에 있는 프랜차이즈 빵집들 사이에서 냉동반죽이 아닌 자신만의 빵을 굽는 가게를 꾸려나가는 분에게서 들은 것이다. 물론 이런 분들도 좋은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대형 빵 업체가 마케팅에 그보다 더 많은 탄력을 받았을 것이라는 건, 눈으로도 그리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마트 진열대를 확인해 보시라. 그리고 그렇게 마트에서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현실이 바로 빵을 둘러싼 우리의 현실이다. 겉으로 보여주는 이미지는 한없이 유럽을 ‘벤치마킹’하고 있지만, 사실 그 내용물들은 그 유럽의 이미지를 따온 일본을 흉내 낸 것이다. 물론 그 흉내 내기의 과정에서 장인 정신 따위는 그 자리에 그대로 놓아두었다. 빵집들이 그런 이미지를 차용하다보니 “아줌마들이 유럽 여행가서 오래된 빵집들 보고 ‘멋지다’를 연발하면서 돌아와서는 프랜차이즈 빵만 산다.”라고, 누군가 트위터를 통해 꼬집기도 했다(인용하는 과정에서 140자를 넘기지 않았는지 걱정이 된다).

어디 그 뿐인가? 제과 명장이라고 불리는 사람의 빵집에서조차 빵과 케이크의 구분이 없음은 물론, 찹쌀떡이며 아이스크림까지 팔고 있는 것이 아직도 우리가 빵에게 떠안기고 있는 폭력적인 현실이다. 밀가루, 소금, 물, 효모 이 네 가지 재료만으로도 평생 연구하면서 만들어야 하는 것이 빵이다. 효모는 생명체다. 온도나 습도에 따라 같은 레시피의 빵이라도 그 결과가 다르다. 빵은 그만큼 예민하고, 그 예민함을 감으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명장이라는 칭호는 한 우물을 파는 사람에게 붙여줘야 한다. 우리가 우습게 아는 것이 어디 빵 뿐이겠느냐만, 밀가루를 옹호하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음에도 우리의 현실을 보면 빵이 한없이 측은하게 느껴진다. 빵에는 죄가 없다. 빵을 못 만드는 사람에게 죄가 있을 뿐. 팥, 크림, 견과류, 밤 따위로는 모자라 경쟁업체의 침몰이라는 막중한 사명까지 지고 폭탄이라도 짊어지듯 죽은 쥐까지 품어야 했던 불쌍한 빵이며 밀가루를 2011년에는 좀 아끼고 더 이해해 줄 수는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