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이용재의 건축과 음식 사이

디자인이라는 것의 현실과 이상, 그 사이의 괴리


“건축학 전공의 교육목표는 건축사 양성에 있다. 건축사는 건축설계를 전문으로 할 수 있는 법률적 자격을 지닌 사람이나 그 자격 자체를 의미한다. 건축사가 되기 위하여 학생들은 건축설계에 필요한 풍부한 지식(건축역사, 설계이론, 건축계획, 기술공학, 문화예술, 법률제도 등)과 다양한 경험(실무, 관리 등)을 습득해야 한다. 학생들은 최소 5년간의 교육을 받아야 하며, 이는 국제적 수준에 부합하는 건축사의 기본적 자격 요건이다. 본 전공 프로그램을 이수한 학생은 건축학 학사 학위를 취득하게 된다.”

지난 글에서 건축공부에 대한 현실적인 측면을 화제로 삼았는데, 이번엔 학교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의 단계를 뛰어넘어 직업의 울타리 안에서 하게 되는 것에 관한 이야기를 할까 한다. 

오랜만에 모교 홈페이지를 뒤져 과 소개 안내문을 읽어보았다. 바로 위에 있는 것이다. 진로 선택의 기로에 선 고등학생의 시각으로 보았을 때 저 정도의 설명이라면 건축과에서 대체 뭘 배우는지 이해하기가 부족한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일단 설명 자체가 자세하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그렇기는 해도, 자아도취로 넘쳐흐르는 장밋빛 미사여구는 아니라는 점에서 생각만큼 감정이 격해지지는 않는다. 직업의 설명을 법률적 자격에 한정지었다는 측면에서 좀 건조한 느낌이 나기는 하지만, 전 인류의 바른 주생활을 책임질 공간 철학을 지닌 만능 직업인으로 묘사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한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회사에 다닌다는 것에 대해 그저 감이라도 좀 잡을 즈음에 아는 학부생들과 밥을 같이 먹었던 적이 있다. 그들은 방학 때 실습을 했던 친구가, 회사에 들어가면 마음껏 디자인을 하게 될 것이라고 기대에 부풀어 있다가 실망하는 모습을 보았노라는 이야기를 했다. 내가 만났던 학생들도 아니고 그 친구들이라니 대체 어느 만큼의 기대를 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만약 그 기대가 크든 작든 건물 한 채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디자인 하는 것이었다면 학생의 수준에서는 절대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건 학생들의 능력에 상관없이, 건축의 속성 자체가 그렇게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처음 건축 공부를 시작했을 때 학생들이 가장 자주 하던 말이 ‘회사에 들어가면 연필 깎는 것부터 다시 배운다더라’라는 것이었다. 그때만 해도 지금처럼 컴퓨터로 도면 그리는 것이 완전히 정착되지 않았던 터라 연필을 둘러싸고 일종의 자조적인 농담이 통하던 시기였다. 아주 거칠게 해석하면 학교에서 배우는 것이 쓸데없다는 의미일테고, 보다 완곡하게 받아들이자면 실무를 하면서 배워야 할 것이 엄청 많아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다른 전공 또는 직종의 내막은 잘 모르겠지만, 건축의 경우 학교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실무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의 분위기를 익히는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그건 교육의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물론 털어서 먼지가 안 날 수는 없겠지만), 직종의 특성이 부여하는 태생적인 한계라고 생각한다. 

업계의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건축의 핵심을 ‘문제해결’로 본다. 건축물 하나를 완성시키기 위해서는 너무나 많은 문제를 해결해야만 한다. ‘문제’라고 규정했지만 ‘제약’이라고 해도 별 상관은 없다. 이러한 제약을 모두 만족하는 해법을 찾는 것이 어려운 이유는, 그 제한의 성격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는 돈이나 법부터 디자이너 또는 클라이언트의 미적인 취향까지, 가장 현실적인 것부터 이상적인 것까지 그 제약의 ‘스펙트럼’은 참으로 넓다. 거기에다가 다른 제품 디자인과 달리  이 건축 디자인의 목표 또는 결과물이 사람보다 훨씬 큰 규모라는 기본 조건까지 감안한다면 이 제약들의 강도는 몇 배 더 증폭된다. 게다가 이상적인 경우 이러한 제약을 고려해 내놓는 최종 결과물은 일반해가 아닌 특수해여야만 한다. 이러한 제약을 한꺼번에 만족할 수 있는 해법 내놓은 요령을 학교에서 4~6년 안에 배운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실무에서 각각의 특수해를 다루면서 'case by case'로 배울 수밖에 없다. 

내가 회사에서 마지막으로 맡았던 일은 초고층건물군의 지하 주차장이었다. 건물 모양에 맞춰 땅을 파니 주차장의 형태는 이미 결정이 난 상태였고, 거기에 맞춰 최대한 많이 주차가 가능하도록 주차‘셀’을 넣는 것이 나의 일이었다. 건물 기둥의 배치가 바뀔 때마다 주차장의 배치도 그에 맞춰 다시 해야만 했고, 한 번 그런 변화가 생기면 지하 1층부터 8층까지의 배치를 전부 바꿔야만 했다. 때로는 처음에 눈에 뜨이지 않았던 결함이 나중에서야 발견되어 부랴부랴 수정을 해야만 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를테면 엘리베이터가 지하 1층부터 4층까지는 멀쩡하게 내려가다가, 그 아래층부터 뜬금없이 기둥을 박아놓은 자리 한 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 같은 것이었다. 그렇게 엘리베이터 하나의 위치를 바꾸더라도 같은 작업을 되풀이해야만 했고, 그러한 작업을 하나라도 마친 다음에는 또 처음부터 다시 주차가능한 차의 대수를 세서 법 또는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기준 안에 맞는지 확인해봐야만 했다. 그래서 가끔은, 실제는 한 층에 1,250대가 가능하도록 주차공간 배치를 해 놓고서도 10대쯤 모자란 것처럼 보고하는 경우도 있었다. 혹시라도 변경 주문이 들어오면 바로 대처를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주차장은 회사 생활을 만 3년 이상 한 다음에야 할 수 있는 난이도의 일이었다. 처음에는 끝없이 계단을 그리거나, 화장실에 변기를 박아 넣거나 문 손잡이나 난간 같은 것만을 그리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단계들이 일을 배우는 데 꼭 필요한 단계라고 생각해서 지루하지만 거부감은 없이 받아들였는데, 위에서 언급했던 학생들의 경우처럼 학교에서 자기 프로젝트를 디자인하듯 회사에서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실망할 확률도 꽤 크다. 

물론, 계속해서 경험을 쌓아 나간다면 그러한 학생들이 생각하는 디자인이라는 것을 할 기회도 분명히 찾아오기는 한다. 그러나 분업화가 많이 된 큰 회사의 경우에는 그러한 관점에서 ‘디자이너’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이 열 명짜리 팀 하나에 한두 명 정도 밖에 안 될 확률이 더 높다. 흔히 ‘소장’이라고 부르는 팀의 우두머리가 된다고 해도 어떤 사람들은 철저하게 경영의 측면에서 프로젝트를 관리하기도 하고, 오히려 그런 사람들의 수가 더 많다. 

이러한 식의 커리어 계발이 조직에서 개인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하지만, 생각하는 것보다 학생들이 생각하는 ‘디자인’이라는 것의 범위나 입지가 현실 세계에서는 훨씬 더 좁다는 것의 반증일지도 모른다. 한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세상에서 적어도 5년 이후의 일을 예측하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싫었다가 좋아질수도, 혹은 그 반대도 얼마든지 가능하지만), 생각한 것과 너무 다를 수 있다는 걸 미리 아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의사를 생각했을 때 ‘병을 고치는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떠올리게 되고 그러한 과정에서 떠올리는 이미지가 진짜 직업인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와 얼추 들어맞을 확률이 높지만, 건축가의 경우는 조금 또는 그보다 더 많이 다를 확률도 있다고 생각한다. 나쁘게 말하면 이 직업에는 다른 그것보다 환상이 더 많이 깃들어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