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이용재의 건축과 음식 사이

실내공간이 된 아파트 베란다에 대한 생각



기억하는 한, 그리고 우리나라 땅을 밟고 사는 한 쭉 아파트에서 살았던 같은 착각에 빠진다. 자취를 하며 다세대 주택 같은 데서 살기도 했으니 사실 아파트에서만 살았던 것은 아니지만, 돌아보면 꼭 그런 것처럼 아파트는 주거 생활에서 절대적으로 지배적인 기억으로 언제나 자리잡고 있다. 나 같은 사람이 한 둘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아파트는 많은 변화를 거쳐 왔다. 우리 삶의 변화를 반영했다고 말하면 간편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보다는 상품으로서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꾀한 전략적 차별화의 결과물이라고 말하는 것이 더 맞는다고 생각한다. 소비자가 원하는 것을 생산자가 분석해서 반영하느냐, 아니면 생산자가 공급하는 것에 소비자가 맞추는가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도면을 들여다보지 않고, 그저 생활의 경험으로만 따져 보아도 아파트의 변화, 또는 발전(발전이라는 단어를 쓰는데 망설여지는 이유는, 바로 위에서 언급한 것과 같다)을 감지하기란 그렇게 어렵지 않다.
그건 한 마디로 ‘쪼개기’이다. 같은 돈을 주고 살 수 있는 면적이 더 넓어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일 것이다. 그러나
사는 사람들이 그렇다고 느낄 수 있도록, 아파트를 만드는 사람들은 공간을 쪼개고 또 쪼갠다. 몇 십, 또는 몇 센티미터에 사람들은 기꺼이 경쟁단지의 아파트로 발걸음을 돌릴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파트 평면을 짜는 일은 완전한 전문가의 영역에 속한다. 달리 말하자면, 건축일을 쭉 해온 사람이라고 해도 하루아침에 능수능란하게 평면을 짤 수는 없다. 건축의 울타리 안에 있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그 일에 맞게 훈련(?)을 받은 사람들이 경쟁단지와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아파트의 평면을 짤 수 있는 것이다.

이제는 한 줄로 길게 늘어선 편복도형 아파트도 과거가 되어 버렸고, 현관문 외에도 중문이 하나 더 생기는 등의 변화가 전형적인 것이 되어 버렸지만, 기억하기로 전 세대와 뚜렷하게 구분되는 아파트의 변화는 두 가지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가장 중요한 첫 번째 변화는 복수의 화장실이고, 두 번째는 소위 말해 ‘베란다 트기’이다.

베란다를 튼 아파트를 처음 본 건 1989, 90년경으로 기억한다.
한 동네에 오래 같이 살던 친구가 새로 지은 아파트 단지로 이사를 가게 되었는데, 흔히 ‘마루’라고 일컫는 거실의 베란다 공간에도 마루를 놓아 실내 공간으로 쓰는 것을 본 것이다. 1980년대 초, 처음 저층에서 고층아파트로 이사했을 때 소위 말하는 “샷시(어원은 chassis, 금속제로 만든 뼈대)”를 설치해 베란다의 실내공간화 시도를 보았으니 어쩌면 이는 거기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간 자연스러운 진화라고 할 수 있겠다.
처음 터놓은 베란다가 있는 집에 발을 들여놓은 기분은 신기했다. 베란다가 실외 공간일 경우, 난간에 매달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아래를 내려다보곤 했는데, 편하게 마루에 앉아서 같은 경험을 하는 기분은 어린 마음에 작은 사치를 누리는 듯한 기분이었던 것이다.

리고 세월이 좀 많이 흘러 드디어 나도 베란다를 튼 아파트에 살게 되었다. 물론 내가 선택한 것은 아니다. 주인이 집을 분양받을 때 ‘옵션’으로 선택한 것이다.
이 집은 안방에 딸린 베란다만 빼 놓고는 나머지를 전부 텄다. 여름에는 별 느낌이 없었는데, 겨울이 되니까 사정이 달라졌다. 정말 두터운 이중창으로 단열을 하는 시스템인데도 찬바람이 조금씩 새어 들어온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사진의 방은 작업실인데, 집어넣지는 않았지만 오른쪽 옆에는 하루 종일 앉아서 일을 하는 책상이 자리 잡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찬바람도 들어오지만, 여름이면 모기떼들이 새까맣게 달라붙어 있는 끔찍한 광경도 볼 수 있다. 그 가운데 요령 좋은 놈들은 어딘지도 알 수 없는 틈바구니를 비집고 들어와 글공장을 돌리는 내 피를 탐내기도 한다.

물론 아파트라는 건물 유형의 기본 개념 자체에 기본적으로 자연으로부터의 격리가 깔려 있기 때문에 더 이상의 격리를 논하는 것도 부자연스러운 일일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전체의 효율성이라는 것을 따져 본다면, 베란다를 텄을 때 공간을 얻는 것보다 더한 손해를 얻을 수도 있다. 일단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열효율이 떨어진다. 바람이 새어 들어오는 것은 물론, 베란다로 기본 책정된 공간에는 난방을 위한 배관이 들어가지 않으므로 나머지 부분의 열을 빼앗아가는 역할도 한다. 베란다가 그대로 있었다면 실내외 공간 사이에서 완충 역할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게다가 외부와 내부 공간의 사이에 걸치면서 아파트라는 주거 형태에 최대한으로 타협한 공간인 베란다를 완전히 내부 공간의 영역에 편입시키는 것 또한 결과적으로는 그 두 공간의 장점을 골고루 누릴 수 있는 기회를 잃는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위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아파트는 그 천성이며 기본 컨셉트가 인간과 자연을 격리시키도록 설정되었다. 그나마 베란다의 역할이 그 가교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마저도 얼마 되지 않는 실내 공간을 얻기 위해 터버리면 아무 것도 남지 않는다.

10년 전까지도 부모님과 함께 살았지만 한 번도 베란다를 튼 아파트에서 살지 못했던 이유는, 당신들이 그걸 원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식물을 키우시는 것이 취미인 분들이라 베란다는 언제나 그걸 위한 공간으로 쓰인다. 그 아파트에는 아예 작은 화단이 기본적으로 딸려 있기도 하다. 물론 이러나저러나 아파트만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현실은 기본적으로 서글프다고, 누군가는 말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거기에서 선택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