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이용재의 건축과 음식 사이

무시되는 디테일, 미완성의 디자인

그런 식의 버스 동선몰이가 교통의 흐름에 미치는 영향까지 고려하려면 조금 더 신중해야 되겠지만, 일단 눈으로 보는 서울역 버스 정류장의 디자인은 세련된 느낌이다. 때로 기차를 타고 서울에 올라가야 하는 경기도민으로서, 서울역 정문을 나섰을 때 한 눈에 들어오는 정류장의 느낌은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자 그나마 가지고 있던 환상이 깨지고 말았다. 바로 이 손 세정제통(dispenser) 때문이다. 이제는 존재도 잘 기억나지 않지만, 한때 정말 온 나라를 광풍처럼 휘몰아치고 지나간 신종플루의 시기에 서울시 또는 나라에서 국민의 건강을 위해 남겨놓은 배려의 흔적인 모양이다. 역 앞에서 굽어보며 그 미미한 아름다움을 감상하다가, 길을 건너기 위해 걸어 내려와 저 세정제통의 존재를 확인하고는 너무 놀라 잠시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굳이 디자인 쪽에서만 ‘디테일’의 중요성이 부각되는 것은 아니다. 개인적으로는 ‘유종의 미’나 ‘매조지를 잘 해야 한다’라는 말을 결국은 디테일, 즉 작은 부분 하나하나까지 신경을 써야만 한다는 의미로 이해한다. 디자인에서 디테일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면 그보다 큰 모든 존재가 의미 없는 것처럼 간주될 확률이 높다. 디자인은 결국 디테일로 완성되기 때문이다. 특히 건축과 같이, 사용자보다 규모가 크기 때문에 그 전체를 한 번에 인식하는 것이 불가능한 건물을 디자인하는 경우라면 어떤 디자인의 영역에서보다 디테일이 더 중요할 수 있다. 결국 사용자가 가장 쉽게 인식할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위의 세정제통의 경우처럼, 우리나라 사회간접자본 디자인의 디테일은 조악하기 짝이 없다. 사람들이 주의를 기울이지 않기 때문인 것일까? 사진은 난지도 하늘 공원의 가로등이다. 디자인이라고 말할 수도 없는 수준이, 초등학생이라고 말하기엔 너무 혹독하고 딱 중학교 2학년 미술과제의 수준이다. 대학생의 수준까지도 갈 필요 없이, 디자인이나 미술을 전공하는 고등학생들만을 대상으로 공모전을 한다고 해도 이것보다는 더 나은 수준의 가로등이 나올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래도 이 가로등은 양반이다. 그보다 더 기본적인 것들에는 아예 디자인이라는 개념조차 담겨 있지 않다. 사진은 홍익대학교 정문으로 올라가는 도로이다. 최근에 새로 포장을 했는데, 보행자들이 횡단보도를 무시하고 길을 건너자 사진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난간(?)을 도로 한 가운데에 설치했다.

 

사실 도로의 폭이 그렇게 넓지 않기 때문에 신호등까지 달아서 엄격하게 관리할 필요가 있는지조차도 늘 의문이었지만, 서로의 안전을 위해 배려(?)하는 차원에서 난간을 다는 따뜻한 마음씨까지 비난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러나 꼭 저런 식의 살벌한 난간 밖에 선택할 수 없었는지는 참으로 의문이다. 여기에는 디자인에 대한 고려가 아주 없다. 아니, 그래도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노란색과 검정색의 대조를 썼으니 디자인에 대한 고려가 초등학생의 수준만큼은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안전도 안전이지만, 이 흉물스러운 난간이 이 거리의 표정마저 흉물스럽게 바꿔 놓았다. 


나름 세계 디자인 수도를 표방하는 서울인데, 이렇게 디테일에 대한 고려가 없어서 과연 그 목표를 이룰 수 있을지 의문이다. 크고 거창한 것만 이루기 위해 디자인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멋진 건물이라면 문고리 하나, 화장실의 휴지 걸이 하나조차도 기능과 아름다움을 함께 고려한 채로 자리 잡고 있어야 한다. 나의 기대가 너무 큰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디테일에 대한 고려가 없는 디자인은 영원히 미완성일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