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이용재의 건축과 음식 사이

팔자 기구한 피자에게 바치는 추모사



'자장면 피자’를 구상하고 있다. 만드는 법은 간단하다. 피자 반죽(우리가 흔히 ‘도우 dough'라고 부르는)을 펼쳐놓고, 그 위에 자장면을 얹는다. 피자치즈를 듬뿍 뿌리고 오븐에 넣어 굽는다. 중국집 자장면을 얹을 것인지, 직접 만들 것인지를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아, 중국집에서 시킬 경우 보통 자장이냐, 간자장이냐도 결정해야 한다. 그것까지 결정하려니 어째 자장면도 집에서 그냥 만드는 게 속편할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 피자의 팔자는 기구하다. 태어나기도 전에 죽었는데 그 시체가 땅에 묻히지도 못하고 길거리를 나뒹굴며 사람들에게 발길질을 계속해서 당하고 있는 느낌이다.
어디에서 파는 무엇인지를 따질 필요도 없이 '피자' 라는 이름이 붙으면 아무리 싸다고 해도 비싸지는 작금의 이 현실은 그렇게 피자라는 음식이 망가져 어디에서나 뒹굴고 있는 그 현실과는 너무나도 모순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다른 건 다 그냥 안 먹으면 그만이니까 웃어넘긴다 해도, 피자= 토핑 이라는 지극히 동물스러울 정도로 단순한 공식에 충실해 9첩반상이라도 방법만 알면 올릴 기세로 뭐라도 미친 듯이 꾸역꾸역 올리는 이 나라의 피자 현주소가 비극의 영역에 자리 잡고 있음에는 분명하다. 자장면 피자도 그러한 맥락에서 언급한 것이다.

피자광고가 ‘도우’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경우는 드물다. ‘밀가루=싸구려’라는 인식도 어느 정도는 작용하는 것 같다. 그러나 피자의 맛을 좌우하는 것은 토핑이 아닌 도우다. 기본적으로는 바탕이지만, 사실은 핵심이나 다름없다. 한마디로 비빔밥에서 밥이 차지하는 비중과 같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아무리 좋은 고기를 준비하고 나물을 무쳐 고명을 얹어도, 그 밥이 맛없거나 온도가 맞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어지는 상황과 마찬가지다. 

이렇게 사람들이 도우를 등한시하는 상황은, 사실 빵을 좋아하면서도 단팥 또는 크림빵과 같이 소가 들어간 종류의 ‘간식빵’을 좋아하는 선호도와도 연결지어 생각해볼 수 있다. 소를 잘 만들 생각은 해도, 그 바탕을 이뤄줄 빵 반죽에는 그만큼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 종류의 빵을 먹으면, 지나칠 정도로 달거나 균형이 맞지 않는 만큼 많이 든 소를사람들이 싫어하는 밀가루 냄새가 풀풀 나는 빵이 둘러싸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발효에 소홀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김치와 같은 음식이 발효를 통해 그 핵심이 되는 맛을 얻으므로 뛰어난 음식이라고 말하면서, 빵과 같은 음식의 발효는 등한시한다. 아니면 요거트나 자연 발효종을 쓴 빵을 건강식품이라는 명목 아래 마케팅하는데 이 또한 큰 의미가 없다(이런 주제에 대해서는 빵에 대한 글을 쓸 때 보다 더 자세히 언급하기로 하자). 기본적으로 밀가루 반죽의 탄성, 즉 쫄깃쫄깃한 식감을 책임지는 단백질의 함량이 높은 강력분을 써서 질긴 느낌이 나도록 반죽, 씹는 맛이 있는 반죽이 피자 도우의 기본 자질이다.




그리고 ‘토핑.’ 위에서 9첩반상이나 자장면을 언급했지만, 사실 토핑의 종류가 문제는 아니다. 딱히 격식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는 의미이다. 원한다면 김치와 삼겹살을 얹어도 된다. 문제는 토핑의 종류가 아니라 양이다. 도우보다 토핑을 사람들이 선호하는 경향 때문인지 철저하게 양, 즉 푸짐함으로 승부한다. 이렇게 토핑을 많이 얹으면 오븐에서 구울 때 수분이 빠져나오고, 바닥에 깔린 피자 도우가 질척해진다. 또한 식감을 책임져 피자에는 기본적으로 들어가는 치즈인 모차렐라 치즈도 녹으면 기름이 나온다. 이렇게 빠져 나오는 물기, 기름기를 최소화하려면 사실 엄청나게 높은 온도에서 아주 빠른 시간 안에 구워야만 질척거리지 않는 피자를 먹을 수 있다.



오븐 온도 이야기가 나온 김에, 우리식 표현으로 ‘피자 오덕’인 제프 바라사노(Jeff Varasano)'를 소개하고자 한다. 이제는 미국 애틀랜타에 자신의 피자 레스토랑을 연 그는, 자신이 기억하는 최고의 피자 맛을 재현하는데 6년의 시간을 들인다. 그리고 그 과정을 인터넷에 올린 뒤, 폭발적인 반응을 얻어 더 큰 용량의 호스팅 사이트로 옮겨야만 했다. 요약해서 옮길 엄두조차 차마 나지 않는 방대한 자료 속에서 그가 가장 먼저 설명하는 건 피자 도우의 배합비, 피자에 접근할 때 도우에 먼저 초점을 맞추는 접근 방식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어지러울 정도로 피자에 대한 온갖 비법(?)들을 자세히 소개하는 가운데 그가 제시하는 최적의 피자 굽기 온도는 무려 화씨 800도, 섭씨로 치면 425도에 육박한다. 그 정도의 높은 온도에서 피자를 굽는 시간은 2분 내외. 물론 가정용 오븐에서 이런 정도의 온도를 얻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기는 하다. 이렇게 높은 온도에서 굽다보니 군데군데 거뭇거뭇하게 그슬리게 되는데, 이걸 탔다고 생각하는 건 개인의 취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