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이용재의 건축과 음식 사이

박찬호 선수의 옛집, 알링턴 스타디움


원래 야구장에 대한 글은 지난 번으로 끝내고 다음 봄을 기약할 계획이었으나, 텍사스 레인저스가 창단 이래 처음으로 월드 시리즈에 진출한 기념으로 부랴부랴 한 편을 더 준비한다. 몇 년 전, 루이스 칸의 킴벌 미술관을 보기 위해 달라스/포트 워스 지역으로 여행 갔던 길에 들른 적이 있다.


원래 워싱턴 세네터스였다가 텍사스로 옮겨 자리를 잡은 레인저스의 지난 49년은 한마디로 불운의 역사였다. 반세기에 가까운 기간동안 가을 야구는 딱 세 번 밖에 하지 못했으며, 그마저도 늘 양키스를 만나 1회전도 채 통과하지 못했다. 그 불운의 역사는 빚을 떠안고 계속된 팀 운영 때문에 올해 절정을 이루게 되었는데, 전설의 '텍사스 특급' 놀란 라이언의 팀 매입으로 이제 그 불운의 역사를 뒤로 하고 월드 시리즈에 진출, 팀 역사의 전환점을 마련하게 되었다.

미국 사람들이 우스개로 주고 받는 말 가운데 '텍사스에서는 모든 것이 크다(Everything is big in Texas)'라는 말이 있다. 주 자체의 면적도 그렇지만 파마로 올린 여성들의 머리모양을 비롯해 스테이크까지, 그 모든 것이 텍사스에서는 훨씬 더 크게 존재한다는 의미이다. 그런만큼 상대적으로 섬세한 구석은 떨어진다는 느낌인데, 야구장도 그렇다.


한마디로 알링턴 스타디움의 디자인은 옛날 타이거 스타디움이나 1973년 이전의 양키 스타디움, 펜웨이 파크를 포함, 지난 글에 언급했던 에베츠 필드나 캠든 야즈와 같이 전설적인 구장들의 좋은 점들을 '차용'한 것이다. 그만큼 독창적인 느낌은 떨어지고, 조금 더 부정적으로 말하자면 조잡한 느낌마저 준다. 특히나 야구장 바깥 벽에 붙어 있는, 텍사스 주와 야구의 역사를 주제로 한 부조에서 그런 느낌이 가장 강하다. 


기능적인 측면에서도 알링턴 스타디움은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켜왔다. 더운 날씨 탓이었다. 그 날씨 자체도 문제지만, 그로 인해 야구장 안에서 제트 기류가 발생해서 다른 구장에서라면 평범한 플라이볼일 타구도 담장을 넘겨 홈런이 되곤 했다. 그로 인해 해수면보다 1마일, 즉 1.6 킬로미터 높이에 자리잡은 쿠어스 필드(콜로라도 로키스)만큼은 아니어도 투수들의 무덤이라는 악명을 몰고 다닌다. 플라이볼 투수였던 박찬호 역시 부상도 부상이지만, 이런 측면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


시각적인 부분도 중요하지만 반드시 기능적인 측면 또한 만족시켜야 하기에, 건축 디자인 과정에는 공학을 비롯한 많은 다른 분야 전문가들의 손길 또한 필요하다. 이러한 경기장의 경우 시뮬레이션을 통해 구장 내 공기의 흐름을 미리 예측하고, 건축가와 협업을 통해 경기장이 투타 한 면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한다. 알링턴 스타디움의 경우에도 후속 조치를 위한 논의가 이루어졌지만, 아직까지는 실행에 옮겨지지 않았다. 1994년 개장 당시에는 지금처럼 개폐식 지붕을 위한 기술이 발달되지 않았기 때문에 비용까지 고려했을때 현실성 없는 대안이었다.

그렇게 텍사스에서 야구하기 힘든 계절이 지나고 이제는 늦가을, 처음으로 월드 시리즈를 유치하는 알링턴 스타디움에서 텍사스 레인저스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명승부를 기대해본다.


*덤으로 올리는 사진은 이웃의 텍사스 스타디움. 1971년부터 2008년까지 미식축구팀 달라스 카우보이스의 홈구장이었다. 카우보이스는 작년부터 1천 3백만달러짜리 새 집인 카우보이 스타디움으로 자리를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