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이용재의 건축과 음식 사이

야구장 건축과 샌프란시스코의 AT&T 필드


우리나라와 미국 양쪽 모두에서 야구 포스트 시즌이 한창이다. 우리나라는 삼성 대 SK의 코리안시리즈를 앞두고 있고, 미국은 2회전에 해당하는 리그 챔피언쉽 시리즈가 곧 시작된다. 포스트시즌의 열기가 절정에 달아오르는 마당에 야구장에 대한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다. 나는 메이저리그는 물론 마이너 리그의 유망주 리포트까지 열독하는 야구광이다(그만큼의 수준은 아니지만 미식축구 또한 즐겨보는 편이다). 때문에 야구장이 있는 도시를 많이 여행했고, 메이저리그 30개 구단의 홈구장 가운데 절반 정도는 돌아본 것 같다.

리글리 필드(시카고 컵스의 홈구장)나 펜웨이 파크(보스턴 레드삭스)와 같이 역사적인 상징 취급을 받아 헐 수 없게 된 몇몇 구장들을 빼놓는다면, 거의 대부분의 야구장들이 지난 15년 사이에 새로 들어섰다. 그 시작은 연속 경기 출장 신기록을 세운 칼 립켄의 홈구장인 캠든 야즈(볼티모어 오리올스, 1992년)이었다. 보다 더 현대적인 야구장의 시대가 막을 연 것이다.

 

이러한 새 세대의 야구장들에서 공통적으로 찾아볼 수 있는 특성은 크게 두 가지이다. 첫 번째는 야구만을 위한 디자인 추구이다. 70~80년대에 지어진 그 전 세대의 야구장은 사실 다목적 구장이었다. 실외 스포츠의 양대 산맥이라고 할 수 있는 야구와 미식축구를 함께 유치할 수 있도록 디자인해, 봄부터 늦가을까지는 야구를, 초가을부터 겨울까지는 미식축구를 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야구와 미식축구는 전혀 다른 성질의 스포츠이고, 경기장의 형태 또한 너무나도 다르다. 이 두 스포츠를 함께 유치할 수 있도록 만들다보니 사실 구장은 네 맛도 내 맛도 아닌 방식을 존재했다. 또한 미식축구는 10만 명까지 유치할 수 있는 큰 경기장에서도 경기 관람이 가능한데 반해, 야구 경기는 그만큼의 관중이 들어가는 경기장에서는 경기를 제대로 관람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새 세대의 야구장은 야구 전용 구장으로 디자인되었고, 수용 관중수도 3만~4만 수준으로 낮춰 양보다 질을 추구하는 관람이 가능하게 만들었다. 실제로 이런 차이는 정말 확연해서, 구(舊) 양키 스타디움은 전설 속의 그곳에 왔다는 기분은 느낄 수 있지만, 실제로 야구를 보기는 불편한 공간이었다. 요즘의 야구장은 관중석이 운동장과 가깝고 경사도도 굉장히 완만해서, 보다 더 경기를 가까이에서 본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그리고 또 다른 특성은 외관의 디자인에 관한 것이다. 많은 야구장들이 새로 지어지면서 일종의 ‘오마주(개인적으로는 이런 표현을 별로 좋아하지 않음을 밝혀둔다)’ 차원에서 전전 세대에 존재했던 전설의 야구장 디자인을 차용했다. 그 가장 대표적인 예가 바로 몇 년 전에 새로 들어선 시티 필드(뉴욕 메츠)이다. 바로 옆 동네 브루클린 출신인 메츠의 구단주 프레드 윌폰은 어린 시절 즐겨 갔던 브루클린 다저스(현 로스엔젤리스 다저스의 전신)의 홈구장인 에버츠 필드의 추억을 시티 필드에 녹여내기를 원했고, 그 의사가 반영되었다.

 

이러한 경기장의 디자인은 특화된 영역이므로, 그러한 건물 유형만 전문적으로 디자인하는 회사들의 손에 맡겨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러한 메이저리그 야구장 외에도 마이너 리그는 물론 대학과 같은 학교 스포츠의 수요도 만만치 않고, 미식축구나 농구와 같은 종목을 위한 시설도 보다 더 특화된 손길이 필요하다. 물론 이러한 특화는 단지 경기장과 같은 특수시설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건축회사는 자신만의 영역, 즉 건물 유형을 가지고 있다. 고층 건물 전문회사도 있고, 박물관이나 미술관과 같은 전시시설에 남다른 내공(?)을 보여주는 회사도 있으며 작은 주택이 전문인 회사도 있다. 축적된 경험은 빠르고 보다 더 확실한 문제 해결 및 고객의 요구에 부합하는 능력을 보여준다.

 

대부분의 새로 지어진 야구장들이 훌륭하지만 가 보았던 메이저리그 구장 가운데 단연 최고는 샌프란시스코의 AT&T 필드(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이다. 마침 자이언츠는 아틀란타 브레이브스를 꺾고 필라델피아 필리스와 내셔널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 진출했다. 일단 그 입지부터 AT&T 필드는 남다르다. 바닷가에 바로 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클랜드쪽에서 베이 브리지를 타고 넘어오면 발아래 왼편으로 야구장이 보이는데, 그렇게 바닷가에 자리를 잡고 앉아있는 자태부터가 정말 아름답다. 박찬호 선수가 다저스에서 전성기를 보내던 무렵 경기를 즐겨 보았던 사람이라면 이 경기장을 기억할 확률이 높다. 게다가 샌프란시스코는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통산 최다 홈런 기록을 갱신하고 사라진 배리 본즈의 홈구장이니, 야구팬이라면 사실 누구나 기억할만한 구장이기도 하다. 왼손 타자인 그가 홈런을 치면 오른쪽 담장을 넘겨 공이 바로 바다로 빠지곤 했는데, 바로 거기가 ‘맥코비 만(灣)(McCovey Cove)’으로 또 다른 자이언츠의 전설 윌리 맥코비의 이름을 붙인 지점이다. 

AT&T 필드는 샌프란시스코라는 아름다운 도시에 걸맞는 아름다운 구장이다. 이제 많은 경기가 남지는 않았지만 양보다 질이라고, 정규시즌의 열기가 농축되어 포스트시즌의 마지막 불꽃이 활활 타오르고 있다. 새 시즌이 다가오는 내년 봄에 또 한 번 야구장에 대한 이야기보따리를 펼쳐놓을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