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이용재의 건축과 음식 사이

새 교보 본점에 대한 잡다한 생각


언니네 이발관의 리더 이석원은 그의 일기를 통해 두 번째 교보본점(이하 교보)에 대한 불만을 토로한 적이 있다. 책에 따라 공간이 나뉘어져 있던 맨 처음의 교보가 더 좋았다는 것이다. 나도 그 옛날 교보에 대한 기억을 어렴풋이나마 가지고 있기는 했지만, 내가 가지고 있던 불만은 정확하게 비교로부터 비롯된 것은 아니었다.

결과를 따져 본다면 불만을 느끼는 이유는 비슷했다. 공간의 가운데에 자리잡고 있던 타원형의 동선은 그 규모가 너무 커서, 왠지 책을 위한 공간이라면 당연히 가지고 있어야 할 아늑함이나 편안함의 기회를 원천봉쇄하는 느낌이 들었다.

책을 책장에 세워서 보관하면, 그 책의 모임은 하나의 벽이 되어 큰 공간을 나누는 역할을 한다. 게다가 그 책장과 책장 사이의 공간, 복도는 한 사람의 어깨 넓이(45~60센티미터)정도로 좁다. 그렇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하나의 큰 열린 공간인 큰 도서관에 가더라도 책장 사이에서는 일종의 아늑함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얼마나 많은 영화들이 도서관 책장 사이에서 연인들끼리 노닥거리는 장면을 넣었는지, 세어 보면 끝도 없을 것이다. 

그러한 두 번째 교보가 개보수를 위해 문을 닫는다는 소식을 들었을때, 사실 나는 새 공간에 대한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공간도 공간이지만 가장 큰 이유는 설비 때문이라고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하 공간인 교보에 내장된 설비의 수명이 20년이라는 것이다. 두 번째 교보문고가 문을 연 건 1992년이었으니 때가 되기는 했다.

게다가 그 원인을 생각한다면 가능한 빨리 개보수를 해서 문을 열어야 할 상업공간에 철학까지 바라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물론 백화점이라면 상황은 다를 수 있다. 그리고 도서관이라면 또 다르다.

하지만 서점이라면 일단 그 권위는 책에 기댈 수 밖에 없다. 그 이상의 것을 바라기에 우리가 책을 그렇게 사랑하는지, 솔직히 나는 잘 모르기 때문이다. 책을 사랑하려면 지식을 사랑해야만 한다. 물론 우리도 지식을 사랑한다, 아기새의 심정으로. 어미새가 먹이를 물어다 입에 넣어줄 때까지, 아기새들은 입을 벌리고 짹짹거릴 뿐이다.

수능 1세대로서 논술이며 본고사를 준비하던 시절, 고전을 많이 읽은 학생이 유리할 것이라는 식의 전망이 나오자 책이며 논술 따위를 정리한 잡지가 처음 선을 보였다. 마침 오늘 동네 도서관에 잠깐 들렀다가 아직도 나오고 있는 그 잡지를 보았다. 사람들은 그런 잡지를 사랑한다.

책도 마찬가지다. 가공되고 재단되어 자신이 소화하기 편한 지식을, 그런 책들을 요즘 사람들은 사랑한다. 책에 대한 책이 나오면 또 누군가는 책에 대한 책에 대한 책을 쓸 것이다. 그 책에 대한 책에 대한 책을 읽으면 그 책을 읽은 것과 마찬가지가 될까? 바쁘니까 그런 거라도 찾고 읽어주는 것만으로 감지덕지 해야되는 상황인 것일까?  

대학에서 그런 경험을 해 본 사람도 있을 것이다. 좋아하니까 강의도 열심히 듣고 노트도 잘 만들어 시험에 대비했는데, 친한 친구 한두 녀석에게 복사해준 노트가 시험장에 들어가보니 모두의 손에 들려있는 상황. 필요한 건 한 학기동안 계속되는 수업에서 제공되는 지식이 아니라, 단 한 시간짜리 시험 점수를 잘 받게 해주는 소화흡수가 잘 되도록 누군가의 손에 재단 및 가공된 지식이다. 어떤 누군가는 절대 그 다른 누군가가 되지 않는다. 물론 학점은 똑같이 받는다.

교보가 문을 닫는 동안 출판업계의 판매량은 전반적으로 저조했다고 한다.
내 책도 교보가 문을 닫은 기간에 나오다 보니, 본의 아니게 그 여파(?)를 몸소 체험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물론 통계자료를 본 것도 아니고 그저 주워들은 것이기 때문에 그 수치를 들먹이고 싶지는 않지만 적어도 생각보다는 큰 수치였다. 아무래도 교보라는 공간이 서점으로는 위치와 규모를 볼때 가히 '아이콘'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보니 충분히 이해가 가는 상황이었다.

두 번째 교보는 주말이면 정말 걸어다닐 수 없을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 책을 살 생각이 없던 사람들이 편한 약속장소를 찾기 위해 들렀다가 우연히 집어 든 책을 충동구매 한다면? 또한 그 책이 마음에 들어서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하는 등, 입소문을 낸다면?

교보의 부재는 책이 팔리도록 하는 요인의 큰 줄기 하나를 짧은 기간이나마 시들게 만든 격이었다.
 


출판업계의 원성을 더 이상 견디디가 힘들었는지, 교보는 예정보다 조금 일찍 문을 열었다.
처음 찾았을때 예의 그 '새 집 냄새'가 만만치 않아 느긋하게 책을 보기가 조금 버거웠고, 점원들은 부지런히 책을 서가에 꽂고 있었다.
일단 탁 트인 진입부는 탁 트였다는 사실에는 점수를 높이 줄 수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휑덩그렁한 느낌이었다. 진입부의 계단 절반을 나무로 씌워 사람들이 앉을 수 있도록 했지만, 계단의 방향을 고려해보았을때 움직임이 활발한 거리로부터 등을 돌릴 수 밖에 없다. 길거리 벤치에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을 구경하는 것도 도시의 큰 매력 가운데 하나라는 걸 생각해본다면, 본의 아니게 외면해야 하는 현실이 그렇게 달갑지는 않았다.

서점만 부랴부랴 연 가운데 나름 문화라면 문화라고 할 수 있는 피맛골 가게들을 다 밀어버리고 공원을 들어 앉히고 있지만, 여기에도 큰 기대는 없다. 결국 그 자리에 들어설 것들은 사람을 불러 들이고 가까이 하도록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 하여금 적절한 거리를 둔 다음 멀리에서 보았을 때 그림이 좋아보이도록 만드는 요소일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공간을 완성하는 것은 사람이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자발적으로 완성할 수 없도록 꾸며진 공간도 많다. 

 
들어가는 길에 걸린 커다란 현수막에 '소통하는 공간'이라는 문구가 유난히 눈에 더 들어온다. 소통, 요즘 가장 잘 나가는 '유행어'가운데 하나이다. 다들 '화두'라고 말하기 좋아하는데 굳이 유행어라고 말하고 싶은 이유는, 소통이라는 것이 원래 중요하지 않았다가 요즘 들어 중요해진 개념도 아닐 뿐더러 요즘 사람들이 말하는 그 소통이라는 것은 결국 SNS에 밀착시켜 마케팅의 도구로 삼기 위한 개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 또한 그 많은 SNS를 부지런히 사용하고 있지만, 커피숍에 친구들끼리 앉아 서로의 트위터만 들여다보다가 웃기는 트윗이 떴을때 친구에게 물리적으로 '리트윗'하는 것이 정확하게 소통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어쨌든,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교보가 어떻게 소통하는 공간을 꾸미고 싶어했는지에 대해서는 선명한 그림이 떠오르지 않았다. 개인적으로는 정말 교보가 소통하는 공간이 되고 싶다면, 그 해답은 너무나도 뻔하지만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중간지점을 추구함으로써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오프라인 매장을 가지고 있는 교보만이 할 수 있는 '바로드림'과 같은 서비스가 그 좋은 예가 될 것이다.

굳이 '디지로그'같은 거창한 무엇인가까지 들먹일 필요도 없다. 무슨 이해관계가 얽혀있기 때문에 그렇게 못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이동통신사가 제공하는 것과는 별도인 자체 무선 네크워크를 탄탄하게 구축한다. 그리고 서울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다는 지리적인 아이콘, 또한 가장 큰 서점이라는 일종의 물리적인 아이콘인 현실에 일종의 가상공간의 문화'허브'로서 가질 수 있는 아이콘의 지위를 더한다면 교보의 위상은 보다 더 탄탄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희망사항일 뿐, '감압식이므로 손톱을 누르면 더 편하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와 같은 종류의 친절한 안내문구가 붙은 검색 스크린은 터치스크린으로만 가겠다는 소망을 버리고 어느 새 키보드를 갖추었다. 동선이 겹치는 곳곳에 커다란 스크린이 아름답게 붙어 있기는 하지만... 그저 아름다울 뿐이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두 번째 교보와는 달리 책의 종류에 따라 공간이 나뉘어 있어, 복도가 예전만큼 넓기는 하지만 복도와 책이 있는 공간의 영역이 더 뚜렷하게 구분된다는 느낌이 든다. 이제는 그 일기의 글을 바탕으로 책을 내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이석원이 이 공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져, 아주 오랜만에 그의 홈페이지에 들러 지난 일기를 뒤져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