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이용재의 건축과 음식 사이

만화라서 의미있는 <스위트 하우스>



<스위트 하우스(설계사무소 이야기)>
타이세이 사이토 글,그림 /
 장혜영 번역 / 전 2권 / 서울문화사


건축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여자는 건축사('건축설계사'라고 번역되어 있지만 우리나라에는 그런 직업 명칭이 없다.
'건축기사'와 '건축사'가 맞는 명칭이다)인 남편이 갑자기 죽자 사무소를 떠맡아 끌고 나가기로 마음 먹는다. 그러나 여자에게는 면허도, 경험도 없다.
고민하는 여자 앞에 허우대 멀쩡한 남자가 나타나 남편의 자리를 맡겠다며 일을 자청한다. 수습기간에는 월급도 많이 받을 필요 없다며, 받은 돈마저 돌려준다. 알고 보니 이 남자에게는 죽은 남편과 얽힌 사연이 있다.


<건축을 말하기>, 또는 <건축에 대해서 말하기>는 대체 얼마만큼 거창하여야만 하는 걸까? 이 책을 첫 번째로 소개하는 것으로 그 대답을 대신하려 한다. 더 거창하고 무거운 다른 책들의 존재를 모르기 때문이 아니다.

새로 문을 연 교보문고 본점 건축 서가에서 나는 꽤 많은 책들을 보았고, 그 책들의 존재에 다소 놀라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 놀라움은 이 책을 고르는데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이런 만화책의 존재에 불만을 품는 사람이라면 새 교보문고 본점의 건축 서가에 들러볼 것을 권한다. 당신을 만족시켜줄만한 무거운 책들이 가득하다. 물론 이 블로그에서도 차츰 소개하게 될 것이다). 

'건축' 서가에 꽂힌 많은 책들이 건축 안에서도 무거운 것으로 머무는 개념이며 용어로 건축을 설명하려고 하는 것과 달리, 이 책은 그 자체로 건축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러브하우스>를 기억하는가? 반짝반짝 빛나는 새 삶의 터전 앞에서 사람들은 감격에 겨운 눈물을 짓곤 했다. 새 집의 계획안을 내밀었을 때 이 책에 등장하는 의뢰인들이 보여주는 반응도 그와 딱히 다를 것 없다. 다 지어진 집을 보는 것이 아니고 또한 자기 돈을 들이기 때문에 감정표현이 절제된다는 느낌이 들기는 한다. 그러나 그 모자란 부분을 일본 냄새 솔솔 풍기는 호들갑이며 신파로 메우기 때문에 이 만화책의 분위기도 그렇게 만만치만은 않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손발이 오그라드는" 부분이 만만치 않게 있다. 

내용이나 분위기도 중요하지만, 만화책 그 자체의 존재도 무시할 수 없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 만화는 일본산이다.  건축도 있고, 당연히 건축가도 있으며 또한 만화가도 있지만 우리에게 이런 만화는 없다. 최근 우리 음식을 소재로 한 만화 <식객>이 27권으로 완간되었는데, 거기에 관심을 기울일 사람들이라면 이미 <맛의 달인>,<미스터 초밥왕>,<신의 물방울>과 같은 만화를 읽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식객> 한 종류 뿐이다.

<스위트 하우스>는 앞에 언급한 만화책들처럼 수십 권짜리 한 질의 물량공세로 사람들을 압도하는 만화책은 아니다. 딱 두 권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이런 만화책조차 없다. 그러나 다른 무거운 책들이라면 얼마든지 있다. '건축 만화'라는 검색어로 인터넷 서점을 뒤져보면 몇 권의 책이 나오는데, 그것들마저도 만화의 시각적인 면을 차용했을 뿐, <스위트 하우스>처럼 그 서사마저 활용하지는 않았다. 게다가 우리나라에서 지은 건 단 한 권도 없다. 어째 삼천포로 빠져 만화의 현실에 대해 논해야 할 것만 같다. 

그렇다고 우리가 건축에 관심이 없느냐면, 그런 것도 아니다. 다만 다른 측면에 더 관심이 많을 뿐이다.
건축 바깥의 사람들에게 건축은 부동산을, 그리고 곧 재산을 의미한다. 건축, 즉 공간을 통한 삶의 질 추구는 사치라고 느낀다. 그리고 건축 안의 사람들은 평범한 생활인으로서 가질 수 밖에 없는 부동산에 대한 관심과 학교에서 배운 온갖 콘셉트며 철학, 그리고 유명한 건축가들의 "작품"이 빚어내는 이상세계 사이에서 갈등한다. 회사에서 일할 때는 온갖 이상이며 철학을 논하지만, 정작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곳은 그런 이상이며 철학 따위는 녹아 있다고 보기 어려운 아파트이다. 그러나 모순을 자각하기 시작하면 그 고통이 너무 커질 것만 같아 스스로 그 자각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다.

<스위트 하우스>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작은 변화가 가져오는 행복 같은 것이다. 이 책에는 이름이 잘 알려진 건축가들의, 인류 모두를 행복의 나라로 이끌어줄 것만 같은 철학적인 콘셉트의 이상세계 같은 것들은 드러나지 않는다. 그저 지극히 개인적인 행복 추구의 욕구와, 그 욕구에 귀를 기울이는 작은 건축의 이야기가 있을 뿐이고 그런 콘셉트 없이도 행복한 삶의 터전은 그 자리를 훌륭하게 잡는다. 이런 책을 읽고 나면 부동산과 아파트, 루이스 칸이나 르 꼬르뷔지에와 같은 양 극 사이 어느 중간 쯤에 우리의 자리가 있는지 한 번 더 생각하게 된다. 아마 그 지점에서 <스위트 하우스>가 외롭게 서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