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이용재의 건축과 음식 사이

<알기 쉬운 건축 건축을 모르는 내 아내와 학생들도 이해하는 건축이야기>


<알기 쉬운 건축 건축을 모르는 내 아내와 학생들도 이해하는 건축이야기>
글 장성제, 사진 박성현
시공문화사, \12,000


돌아보면 나는 사실 건축의 울타리 바깥에 있는 사람들에게 내 일에 대해 설명할 기회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학교에 오래 있었지만 주변에는 온통 비슷한 공부를 하는 사람들뿐이었다. 다녔던 회사도 당연히 우리가 ‘설계 사무소’라고 부르는 건축회사였다. 모두 건축의 바다에서 헤엄치는 물고기들이었고 나는 그저 한 마리의 피라미였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대체 무슨 일을 하는지 설명할 기회를 도통 가져본 적이 없었다. 아주 가끔, 늦게 일을 마치고 바에 들르면 누군가 물어볼 때가 있었다. 무슨 일을 하느냐고. 나의 대답은 “Architecture,” 그 또는 그녀의 대답은 조건 반사적으로“Awesome!"이었다. 대체 무슨 근거로 그렇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했다. 건축은 멋진(awesome) 직업이라고. 여러 가지 이유에서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건축이 멋진 직업이라면 우리 도시도 지금 이 상태보다 더 멋져야만 하지 않을까. 물론, 이러한 논리마저도 이제는 케케묵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도시를 만드는 게 진정 건축이었던가?


만약 이 책의 제목이 그냥 <알기 쉬운 건축 이야기> 정도였다면, 나는 이 책을 고르지 않았을 것이다. 책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건축을 모르는 내 아내와 학생들도 이해하는’ 이라는 단서를 단다. 그래서 궁금해졌다. 필자가 그의 아내와 학생들에게 이해시키고 싶은 것은 과연 무엇일까? 이해시키려고 한다는 건 결국, 모를 것이라고 가정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러니까 필자는, 아내든 학생이든 그 대상이 건축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건축은 삶에 기본적으로 필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이다. 말해봐야 입만 아프지만, 그래도 ‘의식주(衣食住)’를 들먹이지 않을 수가 없다. 건축은 언제나 언제나 둘러싸고 있는 환경이다. 거기에다가 우리 국민의 부동산 사랑까지 감안한다면 우리는 결코 건축이라는 것을 모른다고 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오늘 압구정동에 새로 생긴 카페에 갔는데, 커피는 괜찮은데 인테리어가 마음에 들지 않더라구. 천장이 높은데 휑한 게 너무 추운 느낌이라서”와 같은, 전문가적인 식견이라고는 하나도 들어 있지 않은 말 한마디에도 사실 건축에 관한 이해며, 가치판단이 깃들어 있지 않나? 가령 “새로 이사갈 아파트는 공용 면적 비율을 최소화해서 지금 집이랑 같은 평(물론 더 이상 ‘평’이라는 단위는 주택 면적을 위한 공식적인 단위가 아님을 밝힌다)이지만 전용면적이 더 넓더라고요”와 같은 말은 어떤가? 우리는 건축에 대해 모르고 살 수 없는 상황에 처해있다. 다만 필자가 책을 통해 제시하고 싶은, 전문가적인 시각에 치우친, 또는 전문가가 비전문가로 하여금 이해했으면 하는 것들을 어쩌면 선택적으로 모를 뿐이다. 만약 그렇게 전문가적인 시각에서 본 건축을 이해시키고 싶었다면, 필자는 이것보다 더 나은 ‘포맷’을 선택하는 편이 더 낫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굳이 “Less is More" 같은 말까지 들먹이지 않더라도, 책에서는 너무 많은 것들을 한꺼번에 집어넣으려고 한 필자의 욕심이 그대로 드러난다. 전문가의 시각에서 전문가가 아닌 사람들이 꼭 알았으면 좋겠다는 것들이 너무 많았던 것일까? 건축의 기원과 같은 역사부터 점, 선, 면으로 시작되는 디자인 또는 인식에 관한 문제, 건폐율, 용적률등과 같은 가장 현실적인 주제를 거쳐 경복궁으로 대표되는 우리 건축까지... 어떻게 보면 함께 자리하는 것이 가능할까 싶은 너무나도 다양한 주제들이 가장 기본적인 건축이야기라는 명목 아래 한데 모여 있는데, 그 순서마저 때로는 갈팡질팡해서 각자가 가져야 할 권위를 누리지 못한다. 가령, 위에서 언급한 경복궁에 관한 이야기의 바로 앞에는 조명이나 가구를 비롯한 인테리어나, 신체 치수의 이해를 바탕으로 펼치는 디자인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두 주제 사이의 상관관계는 무엇인지, 솔직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구성뿐만 아니라, 시각적으로도 책은 너무나 가득 찬 느낌을 준다. 한마디로 포화상태, 또는 압도적이다. 글은 두 가지 가능한 방법 모두로 읽는 사람을 압도한다. 일단 어느 쪽을 펼쳐도 가독성이 좋지 않은 글꼴이 촘촘히 가득 들어차 있어 찬찬히 읽기가 너무 어렵다. 행간도, 자간도 도저히 서로 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거기에 문장 그 자체 또한 쉽게 소화하기 어려운데, 그건 사실 건축보다는 글쓰기의 기술적인 문제 때문이다. 가령 “다른 측면으로는 형태주의적 측면에서 본 건축으로 바셔 H. Wasser는 ”기능적 건축은 마치 자를 가지고 그리는 회화와 같이 잘못된 길“이라는 말은 무감동한 기능주의 건축에 대한 반박을 담고 있습니다.”와 같은 문장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쉽게 감이 잡히지 않는다. 어차피 글쓰기의 기술적인 문제는 사소한 것일 수도 있으니 치워두고 개념이나 사고에 관한 부분만 보려고 해도, 이해가 쉽지 않기는 마찬가지이다(사실 그런 논리로 이 책을 이해하는 것도 쉽지 않은 것이, 건축에서 컨셉트와 디자인이 좋다고 해도 디테일이 나빠서 전체적인 질이 떨어지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가령 책의 뒷표지에 나오는 문단 “우리시대의 창조적 건축은 개념을 통하여 확립된 결과입니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자유로운 건축을 향한 첫걸음입니다. 그리고 자유로운 인간 존재의 실현입니다. 어떠한 구조를 정립하고 체계를 제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개념이 형성해놓은 건축의 규모와 범위를 가늠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한 많은 의미의 테마들이 건축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될 것입니다. 건축은 거대한 이야기로 이루어진 세계입니다.”과 같은 경우는 하나하나 뜯어 대체 왜 이해를 하지 못하는지조차 파악할 수 없을 정도의 거대한 덩어리로만 다가올 뿐이다.


이 모든 것들을 사소한 것으로 치부할 수 있다고 해도 독창성(originality)에 관한 아쉬움은 끝까지 여운의 꼬리를 길게 드리운다. 이 책은 궁극적으로 기존의 지식들을 한데 모아놓은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학습만 있었을 뿐, 소화, 흡수, 재생산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것이다. 그저 트위터와 같은 Mobile SNS가 대세인 요즘 세상에서는 사실 정보가 어디 있는지, 그 정도를 어떻게 적재적소에 활용하는지를 아는 것만으로도 큰 성공을 거둘 수 있기는 하다. 그러나 필자가 그런 것을 염두에 두고 이 책을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바로 앞에 소개했던 책 <건축학교에서 배운 101가지>와 비교해보면, 내부에서 정리한 다음 내놓는 것이 지식을 전달하는 사람에게 얼마나 중요한 능력인지를 쉽게 깨달을 수 있다. 제목의 약속과는 달리, 이해하기 쉽지 않은 책이어서 많이 아쉬웠다. 이 책이 그다지 흥미롭지 않은 읽을거리라는 이야기를 너무 장황하게 늘어놓았나?


사족: ‘Understanding Architectural.' 이 책의 영어 제목이다. <건축을 이해하다>라면 'Understanding Architecture'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바로 안쪽의 표지에도 똑같이 표기 되어 있어 내가 틀렸다고 생각한 찰나, 그 안쪽 표시에 <Understanding Architecture>라고 표기되어 있는 것을 보았다. 이 책은 적어도 2쇄까지 찍은 책이다. 이런 사소한 실수에도 책이 지닐 수 있는 권위는 손상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