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이용재의 건축과 음식 사이

사람의 자리가 없는 공원



가을은 추수의 계절, 눈 앞에 황금색으로 익어 고개를 숙인 곡식의 물결이
눈 앞에 펼쳐진다. 그것도 도시의 한 가운데에서.


다른 매체에 공원에 관한 기사를 쓰느라 추석 연휴 전후로 서울 소재 거의 모든 주요 공원을 돌아다녔다. 공통적으로 읽을 수 있는 특징은 참으로 간단하고 명료했다. 보여주기에 집착한 나머지 이용자여야 할 사람이 피사체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공원이 가지고 있는 '테마'는 그 공원 자체의 존재를 위한 것이지, 사용자인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세운 초록띠 공원'은 아주 작지만 그러한 특징을 함축적으로 품고 있는, 공원 아닌 공원이었다.



이 '공원'에는 사실 아무 것도 없다. 조, 수수 등, 요즘은 잘 안 먹는 잡곡들이 심어져 있다. 구색을 갖추기 위해 원두막도 있다. 사람들은 이 곳에 들러 황금색으로 익어가는 곡식을 보며 옛날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고들 말한다. 그러나 그런 정취를 느끼는 자신들이 서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지는 못한다. 너무 많은 것들을 집어 넣느라 정작 공원에는 사람을 위한 공간이 없다. 요즘은 잘 먹지 않는 잡곡에게 가운뎃자리를 내주고, 아주 드물게 벤치가 가장자리에 드문드문 박혀있다. 눈에 들어오는 것에 취해 정작 공원이 어때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한다. 전시장과 공원은 다르다.